승무/조지훈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11. 16. 17:04

며칠 전에 갈무리한 과일이 생각나서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문을 열자 과일 특유의 새콤달콤한 내음이 밖으로 확 퍼져나왔습니다.

코끝에 닿는 그윽한 내음은 참으로 좋기만 했습니다.

몇 알의 과일이 그 좋은 향으로 칙칙한 경비실을 정화를 시켰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좋은 생각으로, 아름다운 말로, 그렇게 정화 되어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시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은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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