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올려다보니 일곱시 반이었다.
배가 출출했다. 거실에 나가 엊그제 먹다남은 빼빼로 한갑과 귤 세개를 가져왔다.
자고 있는 집사람 깨어날까봐 부시럭거리는 소리들리지 않게 빼빼로와 귤을 까먹기 시작했다.
달콤한 빼빼로와 귤이 입속에서 으깨져 목을타고 뱃속으로 내려가자 밤새 비워있던 위장이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왠일이우. 아침부터 이렇게 내배를 불려주니, 어쨌든 고맙수!"
일주일전, 일요일!
그날은 온종일 억수같이 쏟아지는 각종 폐기물과 쓰레기로 생고생을 해야만했다.
101동 어느 세대에서 집안을 정리정돈한다며 못쓰는 책상과 장농, 더블침대와 각종 가구, 이런저런 쓰레기를 한없이 내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사십대 초반인 두내외가 맞벌이를 하는 그집에서는 그날밖에 시간이 없다며 작심한듯 그렇게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작업하는 인부들은 남자가 아닌 젊은 여자들이었다. 대구에 있는 어느 용역업체에서 왔다는 그 여자분들은 네명이 조를 이뤄 일을 하는데 아주 잘했다.
그 무거운 침대와 책상, 화장대를 손수레에 싣고 능수능란하게 끌고다녔다.
경비원인 나와는 그날따라 일터가 같으니 온종일 만날 수 밖에 없었고 해서, 심삼찮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녀들도 나처럼 밤늦게 까지 일을 했다.
자고 내일 가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일 끝나면 밤에 간다고 했다.
밤아홉시 삼십여 분, 누군가가 "똑똑!" 초소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대답하며 문을 열어보았더니 그녀들이었다.
"저희들 일마치고 내려갑니다. 어르신 오늘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녀들은 빼빼로 두 갑을 내손에 쥐어주고 차에 올랐다.
"잘가요. 모두들 잘살아요!"
그날은 젊은 연인들끼리 빼빼로를 주고받는다는 국적없는 명절, 11월 11일 '빼빼로데이'였다.
제과회사의 상술에 의해 만들어졌을 빼빼로데이.
분명 빼빼로데이는 그런날일 것이다.
그러나 빼빼로데이였던 그날밤.
그냥 가버려도 그만이었을 테지만 함께 했던 열 몇시간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노인네의 가슴에 촉촉히 단비 뿌려주고 간 그녀들!
그리했던 그녀들과 인사를 주고받던 그날밤은 누가뭐래도 내겐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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