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친구2/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9. 14. 21:07

 

 

 

오후 4시 조금 넘어서였다.

어린이놀이터 모래 뒤집기를 하는데 4시가 되자 순찰돌아야한다고 알람이 울었다.

연장을 챙기고 초소로 돌아와 감지기를 움켜쥐고 순찰길에 나서려는데, 누군가가 초소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았더니 친구, 순근이가 빙그레 웃으며 서있었다. "어어, 자네로구만. 오랜만이네!"

우린 반갑게 손을 잡았다.

몇년만에 만나는 친구였다. 무척 반가웠다. 그 친구 얼굴엔 흘러간 세월 만큼의 무게가 느껴졌다. 내 얼굴도 그 친구에겐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자네 요즘도 상가시장, 영진면업사에서 부인과 함께 생활하지. 부인도 잘 계시고?"

"그래, 집사람과 죽어나사나 영진혼수방을 밑천으로 해서 그럭저럭 살아가네."

"나도 그래. 젊을때 돈많이 모아놓지 못한 죄로 늙어서 경비원 해먹고 살아가. 그런데 친구, 우리 몇년전에도 이자리에서 한번 만났었지."

"아, 그래. 기억나네."

친구는 배달을 왔다고하며 106동 가는 길을 물었다. 친구가 끌고가는 손수레에는 크다란 상 한개와 이불보퉁이가 실려 있었다.

"차는?"

"나이도 들고해서 요즘은 운전 안해!"

"내가 밀어줄게."

"이 사람, 근무자가 별소리 다하네. 길이나 가르켜 줘!"

손수레를 끌고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다본다.

 

그 친구와 나는 1995년 1월, 내가 휴천3동으로 전보발령이 난 일주일쯤 지난 뒤 담당통인 3통, 출장길에서 첫대면을 했다. 20여 년이 훨씬 지난 일이라 왜, 무슨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첫대면은 수인사(修人事)가 아니라 한판 싸움이었다.

서로가 한치의 양보가 없으니 기싸움이 크나 큰 싸움으로 확전 되려는 순간 동행한 통장의 중재로 우린 서로 한발자욱씩 뒤로 물러섰다.

통장이 얘기했다.

"여보게 박 사장과 김 주사, 자네들 나이도 엇비슷하니 그만 손잡고 통성명하고 친구로 지내게."

우린 멋쩍게 웃으며 서로 손을 잡았고,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쉽게 손을 잡고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격 고약한 사내들은 단순하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린 막걸리도 함께 마시고 밥한끼도 나누며 우정을 다져갔다.

어느날 막걸리 잔을 기우리던 친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도 성질이 고약하지만 자네도 참 어지간하대!"

친구의 말끝에 우린, "허허허!" 웃어제쳤다.

자동차정비기술을 가진 그 친구는 주공아파트 아랫동네 자택에서 60대초반까지 정비일을 했었다.

 

손수레를 끌고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저만큼 멀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