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주방 가스렌지 센스 속에 숨어있는 묘령의 아가씨는 하루종일 쉼 없이 입을 나불댄다.
"가스렌지 밸브가 열렸습니다."
"가스렌지 밸브가 닫혔습니다!"
"조리가 시작됩니다."
맡은 일에 성실한 건 좋은데 융통성이 없는 게 탈이다.
엊그제 아침나절엔 집사람이 어디가고 없어 커피 한잔 타마시려고 주방에 들어섰더니 이런다.
"문경아제가 커피 한잔 마시려고 주방에 들어오셨습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비서서 돈냥이나 벌어오는데도 사모님에게 오늘 아침엔 커피 한잔도 못얻어자셨나봅니다. 문경아제, 홧팅해요!"
융통성 없는 그 아가씨, 내가슴에 열통을 터뜨리곤 쏘옥 가스렌지 센스 속으로 숨어들었다.
분통이 터졌지만 참았다.
숨어던 그 아가씨 끄집어내어, "콩!" 하고 꿀밤이라도 한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꾸욱 참지 않을 수 없었다.
벌떼처럼 달려들 여성단체들이 두려웠고, '폭력 문인' 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불명예스럽게 문단에서 퇴출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세상만사 참으면 해결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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