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목(裸木)1/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6. 24. 14:25

 

며칠전 오후였다.

초소에 쭈구려 앉아서 쉬고 있는데 폰이 울렸다. 집사람에게서 온 전화였다.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나!'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나뭇가지를 조로케 싹뚝 짤라버렸으니 새가 안 오지. 내가 새라캐도 안오겠다. 새들이 놀러왔다가 앉아서 쉬었다 갈 가지가 없어졌으니 얼마나 욕을 하겠수. 우리 집 매실나무는 새들의 놀이터였었는데."

그랬다. 우리 집 매실나무는 봄부터 가을까지 놀러오는 새들의 쉼터였다. 별별 새들이 쉬어가면서, "호르르 찌르르 삐리르삐익!" 목을 가다듬고 조그만 머리를 흔들어대며 아름답고 고운 노래를 한바탕 지저기고 가곤했다.

 

우리집 매실나무는 심은지 십사오년쯤 됐다. 밑둥이 장정 종아리만큼 굵어졌다. 가지가 무성하다. 가지가 무성하면 뿌리의 세력도 강해지는 법이다.

주공1차아파트에서는 느티나무뿌리가 화장실 밑을 파고들어 뿌리를 잘라내고 화장실을 수리했다고 한다.

수년전 정화조 직관공사를 할때 인부들이 마당안으로 뻗어나온 굵직한 나무뿌리는 짤라버렸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났다. 나무뿌리가 건물 밑으로 파고 들까봐 우려되어 눈질끈 감고 무성한 가지를 사정없이 짤라버렸다. 가지의 세력이 약해지면 뿌리의 세력도 약해지는법이다. 새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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