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날 밤이면 시집간 딸아이가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딸아이가 살고있는 부영아파트 불빛을 바라다봅니다.
멀리 서쪽 산아래, 부영아파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딸아이를 생각합니다.
아들딸 낳고 길러 시집장가 보내다보니 어느새 훌쩍 고희의 나이를 넘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로 살아온 세월이 45년을 넘어섰습니다.
1972년 3월18일,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맘 변치 말자고 언약하며 혼례식을 올리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46년이란 세월이 바람같이 흘러갔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그렇게 싫어했던, 돌아가신지 26년이 지난 아버지를 생각해봅니다.
성격도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처세술이 싫었던 아버지를 생각해봅니다.
말년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외아들인 나를 무척 힘들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퇴행성관절염, 아버지는 중풍, 엎친데 덮친격으로 두분 모두 치매를 앓고 있었습니다. 특유의 어리광짓거리를 아버지가 하실 때마다 내속은 뒤집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우리 집은 단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었습니다. 냉랭하기만 했습니다. 나날을 불효자로 살았습니다. 효자는 하늘이 내려준다는 것을 그때 터득했습니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고야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산이셨다는 사실을. 아버지의 자리는 외롭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당신께서 자식을 힘들게 하셨던 세월은 불과 몇년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 산그늘 아래서 살어가던 시절이 얼마나 포근했던가를 하늘의 명을 알수 있다는 나이 쉰을 넘기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덜 떨어진 자식이었습니다.
부영아파트에서 새어나오는 별빛 같은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나도 자식에게 산이, 산그늘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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