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회적 약속이다.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렇게 부르자고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손가락 걸고 하는 첫사랑의 맹세처럼 낭만적 약속이 아닌 묵시적, 관습적 약속이다.
오동개비는 땟국물이 주르르 흐를 것 같은 지저분한 물건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회적 약속이 선행先行된 용어가 아닌 집사람이 지어낸 집사람 혼자만 쓰는 말이다.
나는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는다. 초소에 손님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종이컵에 커피를 타서 건네긴 하지만.
나는 전용컵인 스텐컵을 사용한다. 대량으로 쏟아져나오는 종이컵은 물적 낭비이고 공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동개비가 된 스텐컵을 엊그제 퇴근할 때 집으로 가져갔다. 집사람은 땟국물이 주르르 흐르는 컵을 깨끗이 씻어서 윤이 나게 닦아 주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순찰, 청소, 쓰레기장 정리, 주차단속 같은 늘상하는 통상적 일들을 끝내 놓고 조금전 초소에 들어왔다.
반짝반짝 윤이나는 스텐컵에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시며 집사람을 생각한다. 오동개비컵을 윤이 반짝반짝나는 컵으로 만들어 준 집사람을 생각하며 빙그레 웃는다.
부부란 마주바라보고 있을 땐 웬수만 같아도 안 보이면 그리운 그런 사이다. 그것이 부부(夫婦), 내외간이다.
참고로 밝혀 둔다. '부부(夫婦)'는 일본식 한자표기이다. 정통적인 우리말은 '내외(內外)'다.
화려한 서양민들레가 이땅의 토종민들레를 산골짝으로 밀어내듯, 일본문화에 밀려 우리의 말과 글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일본화 되어갔다. 이제라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하나하나 찾아내어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제자리에 돌려놓아 후손에게 전해주어야한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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