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아저씨께 드립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지요.
101동 사는 승하예요. 설마 제 이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니시죠?
중간고사 끝나고 집에 들렸어요. 택시에서 내리는데 저만치에서 일하시는 아저씨 모습이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짐 내려놓고 간식이라도 하시라고 우유랑 빵 준비해서 아저씨 찾아뵙게 되었어요.
어릴 적, 아파트 마당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놀다가 아저씨를 만나 인사드릴 때, 아저씨는 늘 밝은 미소로 답해주셨습니다. 그런 아저씨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부지런히 일하시는 아저씨 모습 지켜보면서 저도 아저씨처럼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집을 찾을 때 아파트 마당에서 저를 만나면, '승하가 이제 참 많이 컸구나!' 하시며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시곤 하셨습니다.
아저씨! 이웃에게 베푸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사랑이 하나하나 모여 큰 사랑으로 거듭 난다는 것을 아저씨는 제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아저씨처럼 멋진 글을 쓰고 싶지만 글솜씨가 없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날씨 추워지는데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101동에서
명하 올림.
-승하에게
승하야!
아저씨와 네가 처음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9년이란 세월이 흘러갔구나. 그 9년이란 세월이 너를 예쁜 여대생으로, 아저씨를 어설프게나마 인생을 달관하며 살아갈 줄 아는 고희를 바라보는 노인으로 변모시켜 놓았구나.
승하야, 아저씨는 너를 만날 때면, 예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로 너를 키워주신 네 부모님과 저 높은 곳에서 우릴 내려다보시는 하늘할아버지께 감사를 드린단다.
승하야, 네가 아저씨에게 건네준 빵과 우유는 맛있게 잘 먹었단다. 아직은 학생신분이라 부모님께 용돈 타쓰고 짬짬히 알바해서 몇 푼의 돈을 벌텐데, 그런 돈을 쪼개서 간식을 사다준 너의 고운 마음, 아저씨는 오래오래 간직하려마.
승하야. 간호과 학생들은 임상실습에 임하기 전,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라고 시작되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고 들었다. 그래, 승하야 네가 학교를 졸업한 뒤 간호사가 되고, 먼 훗날 간호사의 제복을 벗는 날까지 그 성스러운 '나이팅게일 선서'를 늘 가슴속에 간직하며 간호사의 직분에 임해줄 것을 아저씨는 부탁하련다.
밤이 꽤 깊었구나. 내일은 새벽같이 출근을 해야 하니 이만 잠자리에 들어야겠구나. 그래 너도 겨울 불청객 감기에 들지 않게 조심하여라.
영주교회 앞에서
경비아저씨, 문경아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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