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백(餘白)/문경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6. 1. 20:05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마을풍경화를 그려오라는 방학숙제를 내셨다. 예전 아이들은 방학이면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 시절엔 공부하라는 어른들의 닦달도 요즘 보다는 훨씬 덜했다.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맘껏 노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다보니 방학숙제는 늘 방학을 일주일쯤 남겨두고 부리나케 해대곤 했다.

 방학이 끝나기 며칠 앞두고 풍경화를 그리려고 널따란 여름방학책 속에 손바닥만한 도화지를 끼어넣고 붓이랑 물감을 챙겨들고 마을 앞산에 올라갔다. 맞춤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마을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목 좋은 곳에 터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죄다 그렸다. 나지막이 엎드려 있는 초가지붕과 집집마다 들어선 나무를 그렸다. 골목길과 앞 논, 졸랑대며 뛰어다니는 강아지도 그렸다. 그기에다 먼산위에 떠있는 구름까지 그려 넣었으니 손바닥만한 도화지는 빼곡히 차버렸다. 참 잘 그렸다고 생각을 했다. 휘파람을 불면서 산을 내려왔다.

 그림을 잘못 그렸다는 것은 6학년이 되고서야 알았다. 풍경화의 생명인 원근법이 무시되고, 채색이 잘못되고, 그림의 포인트가 잘못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그림 속에 여백(餘百)을 남겨두지 않았다는 크나큰 잘못은 나이 들면서 한 줄 두 줄 글을 쓰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손바닥만한 조그만 도화지 속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죄다 그려넣었으니 여백이 있을 수가 없었다. 여백이 없는 풍경화에 맑은 바람소리가, 새소리가, 머무를 수 있겠는가? 밝은 햇살이 다녀갈 수 있겠는가?

 풍경화의 여백은 인생길 걸어가면서 잠시 앉았다 쉬어가는 작지만 넉넉한 쉼터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 조그마한 쉼터 안에 비치된 벤치에 걸터앉아 고달픈 인생길 잠시 쉬어가며 다음 길을 걷기 위한 에너지를 충전한다.

 군대생활 3년 동안 어머니는 아들의 밥그릇에 밥을 챙겨 아랫목에 갈무리를 하셨다. 어머니는 자식의 자리는 비워두면 안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자식을 당신 가슴속에 품고 사셨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풍경화에 여백이 있어야 하듯, 글에도 여백은 있어야 한다. 글에 여백이 없으면 독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독자는 여백 안에 놓여진 벤치에 앉아 새소리도 듣고 하얀 찔레꽃의 은은한 내음도 맡는다. 또, 겨울날에 내리는 포근한 눈 속에 묻히기도 할 것이다.

 그림이나 문학같은 예술뿐만 아니라 여백은 '인간'이란 인격체에도 꼭 필요한 공간이다. 왜냐하면 여백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온갖 모습들을 갈무리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서 언제부터인가 하늘을 올려다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면서 하늘의 넓은 가슴을 조금이나마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덜 떨어진 생각도 해보았다.

 글 몇 줄을 쓰면서 생각을 해본다. 내 글 안에 독자들이 들어설 한 줌 넓이의 여백이라고 남겨두었는가? 독자를 가르치려고 시 건방을 떨지는 않았는가?

 세상사 모든 일은 오래 하다보면 이골이 나고 쉬워지는 법이다. 그런데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니 이 무슨 괴이한 노릇인가! 그러나 어쩌리오. 내 좋아 하는 일을. 그저 팔자이려니 생각을 하며 오늘도 타닥타닥 노느북 좌판을 두드려댄다.   (201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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