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발목이 푹 빠질 만큼 눈이 내렸다. 내릴 만큼 내렸는데도 눈은 쉼 없이 계속 내린다. 순백(純白)의 눈도 욕심은 있나보다.
뜨거운 정열과 낭만, 무언가 그리움으로 젊은 가슴을 가득 채웠던 청춘의 시절! 눈이 내릴 때면 그것도 하얀 함박눈이 펑펑 내릴 때면 어디론가 하염없이 걸어보고 싶었었다. 내딛는 발걸음에 몸을 맡기고 발길닿는 데로 지향없이 떠나보고도 싶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옛날, 피 끓던 젊은 시절의 꿈같은 얘기일 뿐, 몸 따로 마음 따로 몸과 마음이 불협화음을 내는 나이든 지금은 아스라이 멀어져간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다.
정년퇴직을 한 뒤 아파트관리일을 하고 지내자니 겨울에 눈이 내리면 그 눈은 양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다. 종가래로 눈을 치우고 마을진입로와 지하주차장 입구에 염화칼슘과 모래를 뿌리느라 부산을 떨다보면 몸은 그만 녹초가 되어버린다. 내린 눈이 폭설일 때는 온종일을 제설작업에 시달려야 한다.
눈 때문에 나처럼 이렇게 힘든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겨울엔 눈이 내려야 한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봄 가뭄을 막아주고 사람들의 정서를 순화시켜준다. 또 하늘에서 내리는 새하얀 눈은 딱딱하게 굳어버렸거나 차디차게 얼어붙은 우리네 가슴을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주기도 한다. 추운 겨울에 무질서한 군무(群舞)를 추며 저 먼 하늘에서 지상에까지 내려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순백의 눈은 하늘이 우리들 인간에게 내려주는 고귀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정호승의 시,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중에서"
가슴 한켠에 살짝 갈무리한 나이든 사람들의 첫사랑과 눈 오는 날의 추억!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고, 얼굴 살짝 붉어지고, 또 어쩌면 서럽기도 한 나이든 사람들의 첫사랑과 눈 오는 날의 추억. 그 둘은 어찌보면 동일선상(同一線上)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대마을 물방앗간 집 막내딸 정애는 나와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정애는 공부는 그렇게 잘 하지는 못했지만 반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는 되었고 노래와 무용을 잘했다. 정애는 그리 크지 않은 키에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붙임성있는 성격과 귀여운 용모, 거기에다 노래와 무용까지 잘 하니 선생님과 반 동무들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고향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한 나와 동무들은 점촌으로, 상주로, 대구로, 서울로 유학을 가서 고등학교를 다녀었다.
우리가 고3때인 1966년 그해 겨울엔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서울에서 여상을 다니던 정애도, 상주농잠을 다니던 나도, 다른 동무들 마냥 학창시절 3년동안의 손때 묻은 짐을 정리하여 고향으로 내려왔다.
예나 지금이나 설이 다가오면 방앗간은 가래떡을 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마련이다. 정애네집 방앗간도 바쁘기는 여느 방앗간과 마찬가지였다. 고향에 내려온 정애도 옷소매 걷어붙이고 방앗간 일을 도우는 데 그만 안전사고가 일어났다. 몹쓸놈의 기계가 정애의 오른 손목을 싹둑 잘라버리고 만 것이었다.
젊은 가슴을 연분홍 무지개 빛으로 가득 채웠을 정애는 그렇게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오른 손목을, 열 아홉 풋 아가씨의 꿈 많던 가슴을, 정애는 그렇게 잃어버리고 말았다.
서울을 2시간 반이면 거뜬하게 갈 수 있는 요즘 같으면 119구급차량을 이용한다든지 하여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의 큰 병원을 찾는다면 정애가 오른 손목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46년 전의 안타까운 그일을 떠올리며 해보는 서글픈 가정일 뿐이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정애의 꿈 많은 가슴을 사정없이 할퀴고 간 물방앗간 사건도 세월의 흐름속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차츰 잊혀져갔다. 한 두 살 나이를 더 먹다보니 여자친구들은 하나 둘 시집을 가기 시작했고 남자친구들은 입대를 하거나 살길을 찾아 직장 따라 객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1971년 봄, 3여 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귀향했을 때 나보다 조금 늦게 입대한 더대마을 순학이와 옥산동네 윤진이가 말년휴가를 나왔다. 그 두 친구와 함께 정애와 어울려 놀아본 것이 젊은 시절 정애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세월을 무심하다고 했던가. 흐르는 세월의 등에 업혀 실려오는 바람결에 이따금 검증되지 않은 정애의 얘기들이 들려오곤 했다. 정애가 입산해서 어느 절 비구니가 되었다더라, 나이든 돈 많은 사람의 재취가 되었다더라, 하는 안타깝고 유쾌하지 못한 소식들이 귓전을 어지럽히곤 했다.
죽지 않고 사노라면 언젠가 만날 날이 있다고 했던가. 정애를 재회한 것은 지천명(知天命)이라는 쉰의 나이조차 넘겨버린 탓인지 머리털이 반백이 되어버린 1999년 2월, 큰아이 혼례식 때였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동창들이 봉고차를 가득 채워서 영주로 내려왔다. 그 옛 동무들 틈에 정애의 모습도 보였다. 28년 만에 만난 정애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는데도 고마우리만큼 옛 모습을 많이도 간직하고 있었다. 숱한 세월을 혼자서 가슴앓이 하며 살아왔을 터인데 그 옛날의 맑은 얼굴, 오뚝한 코, 살짝 짓는 미소, 약간의 고집스러운 모습들이 흘러버린 세월만큼 성숙해 졌을 뿐, 옛 모습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눈발이 많이 약해졌다.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어이, 김동한!" 하고 부르는 정애의 상큼한 목소리가 들여오는 것만 같다.
눈이 멈췄다. 종가래질을 하다 허리가 뻐끈하여 일어서서 허리를 곧추세운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애를 지켜준 하늘할아버지께 고맙다고 허리 굽혀 인사라고 올려야 할 것 같다.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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