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궤적(軌跡)/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5. 26. 23:17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하얀 나비 한 마리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힌 국제시장 점포 위를 너울너울 날아다닌다. 부두에 떠있는 커다란 배를 바라보며 덕수(황정민 분)는 모진 세월을 함께 살아온 아내 영자(김윤진 분)에게 묻는다. "니 내 꿈이 뭐였는지 아나?"  "뭐였는데요?"  "저기 떠있는 저런 큰 배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게 내 꿈이었던 거라. 니 꿈은 뭐였는데?"  "내 꿈은 현모양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 부부는 세월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첫 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50년, 6.25내전 앞에 조국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헐벗은 조국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국군은 12월 19일 평양을 함락했다. 여세를 몰아 인공의 임시수도였던 강계를 점령하려고 북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연합군과 국군의 발목을 잡은 것이 중국 인민지원군이었다. 자국의 안보에 위협을 느낀 중국은 30여만의 인민지원군을 한국의 내전에 투입시켰다. 압록강을 건너온 인민지원군은 개마고원의 험준한 산골짝에 매복을 하고 있었다. 거칠 것 없는 북진은 정보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전세의 불리함을 감지한 군수 뇌버리는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중국군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육로로는 후퇴가 불가능했다. 탈출구는 오로지 흥남부두를 통한 바닷길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6.25전쟁 중에 가장 참혹한 전투였다는 '장진호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1만 2천여 명의 미 해병 1사단은 사투 끝에 열 배에 달하는 13여만 명의 중국군의 남하를 지연시켰다.

 

   미군의 철수소식이 전해지자 남으로 피난하고자 흥남부두로 몰려든 피난민 행렬은 9만 8천여 명이었다. 그들의 행렬은 떼구름 같았다. 고(故) 현인 선생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그때의 그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190여 척의 선박에는 10여 만 명의 병력과 군인에게는 생명과 같은 무기를 탑재해야했다. 10여만 여명의 피난민을 실을 여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중국군은 점차 추격의 고삐를 당겨오고 있었다. 미 10 군단장 앨몬드 장군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는 단호히 'NO!'라고 외쳤다. 그때 장군 앞에 나타난 사람이 6.25 전쟁영웅 중의 한 사람이었던 고(故) 현봉학 미 10군단 통역관이었다. 현봉학은 앨몬드에게 눈물로서 애원을 했다. '저 구름같이 모여든 동포들을 버리고 가겠느냐고? 저들을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겠느냐고?'

 

   앨몬드 장군의 입에서 'YES!' 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현봉학의 부르짖음은 계속되었다. 현봉학의 집요한 설득은 마침내 앨몬드의 가슴을 녹이고야 말았다. 앨몬드는 아름다운 명령을 내렸다. "배안에 있는 모든 무기와 화약을 부두로 내려라! 비어있는 자리에다 피난민(避難民)들을 실어라. 철수하면서 무기와 화약을 폭파하라." 군인으로서는 도저히 내릴 수 없는 명령을 앨몬드는 내린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흥남부두는 지도상에서 사라졌지만 10여만 명의 동포는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피난지 부산에 정착을 했고, 그 중 일부의 사람들은 북녘땅이 가까운 속초로 올라가 '아바이 마을' 같은 망향촌을 이루며 살아갔다.

 

   영화의 주인공 덕수는 흥남부두에서 죽을 힘을 다해가며 수송선에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막내 여동생 막순이가 잡고 있는 손을 놓치는 바람에 여동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막내딸을 찾으려 나서는 아버지는 그래서 배를 탈 수가 없었고 ,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꼬맹이 아들에게 크나큰 소리로 당부를 한다. "가장은 반드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만약에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덕수 네가 가장 인기라 알겠나. 아버지 말을 알아듣겠나?"  "예, 아버지! 알겠구먼요."

 

   탄더미가 무너져 내리는 독일의 어느 탄광 막장에서, 정글의 나라 베트남의 일터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는 덕수에게 아버지의 당부 소리는 더 크게 울려왔다. '가장은 반드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만약에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덕수 네가 가장 인기라. 알겠지'

 

   영화 '국제시장'은 평범한 삶을 살아온 위대한 아버지, 가장의 궤적을 그린 영상미학이다. 혼신의 정열을 쏟아가며 가족을 먹여 살린, 헐벗은 조국의 몸에 옷을 입혀온 우리네 아버지들의 혼이 작품 속에 녹아든 아름다운 영화이다. 진보니 보수니 하며 삶의 가치를 달리 하는 사람들도 함께 보며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다. 아들과 아버지가 손잡고,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보았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되는 윤제균 감독의 걸작이다. 

 

   이제, 나이 들어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린 이 땅이 모든 '덕수와 영자'에게 조국 대한민국이 보답해야 할 차례다. 무엇을, 어떻게, 그것은 조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 

 

   덕수가 아내 영자에게 묻는다. "니는 이루고 싶은 꿈 이뤘지? 현모양처 말 인기라. 내는 하고 싶은 것 못했다 아이가. 가족 먹여 살리느라고. 큰 배 못 만들었다 아이가....."

 

  국제시장 점포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온 흰나비는  부두 위 파란 하늘 위로 너울너울 날아오른다. 눈을 감고 가슴으로 보라. 맑은 허공 속에 그려놓은 나비의 그림을. 사랑과 평화, 성실과 인내, 그리고 용기와 헌신의 아름다운 그림을.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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