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달이다. 그렇다고 팔자 느긋한 백수건달은 못되고 그저 바람처럼 나다니기를 좋아하는 반건달이다. 백수건달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지만 반건달은 직업도 있고 가솔들을 부양할 줄도 안다. 백수의 안사람들은 아예 남편을 포기했지만 반건달의 안식구들은 그 정도는 아니다.
오늘 다락을 치운다고 며칠 전에 집사람으로부터 통고를 받았다. 친구들로부터 고스톱 치자고 전화라도 올라치면 또 바람처럼 사라질까봐 집사람은 작업하기 전에 아예 오금을 박는다. "다락청소 끝날 때 꺼정은 꼼짝 못하니데이!"
다락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8년 전에 청소를 하고 안했다니 그럴만도 했다. 이불보따리, 각종 그릇, 옷보따리 같은 세간들로 다락 안이 가득찼다.
이불이나 옷보따리는 위에서 떨어뜨리면 되지만 무게가 나가는 세간들이 문제였다. 몸이 성하다면 밑에서 받아주면 되지만 집사람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집사람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집사람은 2002년 6월에 척추디스크 수술을, 또 2007년 3월에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집사람은 그렇게 후천적 장애인이 되었다. 집사람이 후천적 장애인이 된 것은 몸관리 제대로 하지 않은 본인 스스로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의 절반은 남편역활 똑바로 하지 못한 나의 몫일 것이다. 장애인이 된 뒤론 집사람은 몸을 유리그릇 다루듯 했다. 조금이라도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안으려했고 나역시 조금 무겁다고 생각이 들면 내가 들지 절대로 집사람을 시키지 않았다.
다락 안은 후덥지건하고 답답하고 먼지 냄새로 메케하다. 이불보따리와 옷보따리는 아래로 집어던지고 가벼운 세간들은 다락아래에 서있는 집사람이 받아준다. 그러나 그릇같은 묵직한 살림살이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옮기자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렇다고 별다른 묘수가 없으니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
우리 내외는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지만 조금은 다혈질이다 그래서 함께 일만 하면 쌈질을 할 때가 많다. 오늘은 어째 조용한가 했더지 웬걸 집사람이 시비를 걸어온다. "그건 그렇게 내리는 게 아이고." '손끝 하나 까닥하지 안는 사람이 말은 디기 많네.' 속으로 궁시랑 대는데 또 다시 공시랑 거린다. "그건 그짝으로 옮기라 카이." 증기기관차 보일러에 물끓어오르듯 울화통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당신이 올라와서 해봐!" 참지 못하고 냅다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올케 시키지." "됐고만. 걸레 좀 올려주구려." 털고 닦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나니 정리정돈이 어지간히 마무리 되었다. 거실에 내려놓은 자질구레한 세간살이 정리는 집사람의 몫이다. 8년 가까이 처박아둔 세간들의 찌든 때를 닦아내고 씻고 하는 일을 집사람은 틈나는 대로 할 것이다. 그 일도 모르긴 해도 며칠은 걸릴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주방에 내려와서 이불보퉁이를 거실로 옮겨 쌓은 뒤 "오늘 작업 끝!" 이라고 소리 높이 외쳐 대었다. 집사람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는다.
나이 마흔 되던 해에 이사를 왔으니 인생사 이런저런 추억 만들어가며 이 집에 몸담아 살아온지도 28년이 지나갔다. 지은지 채 3년도 되지 않은 집을 사서 이사를 왔는데 살아온 세월만큼 집도 사람도 몰라보리만큼 늙어버렸다.
남은 여정이 그 얼마인지는 신만이 아실 테지만 살아 숨쉬는 날까지 아내의 충실한 손과 발이 되어주리라. 무거운 짐 들어주고, 마트에 가자면 군말 없이 따라가 주고 수군수군 얘기 나누며 돌, 돌, 돌, 돌돌이 밀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동행(同行)이 되리라. (20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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