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목탁소리/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5. 28. 10:41

 요즘엔 시주를 하러 다니는 탁발승(托鉢僧)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옛날 어릴 적, 고향마을에는 스님들이 참 많이 찾아오곤 했다. 옛날, 시골에서는 낮에는 거의 삽짝을 걸지 않았다. 사람들은 열린 삽짝 안으로 들어와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는 스님에게 살아가는 형편껏 시주를 했다. 물론 그때라고 시주는 하지 않고 쪽박만 깨버리는 놀부 사촌쯤 되는 성질 고약한 사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목탁은 두드리면 맑고 고운 소리가 나는 아름다운 악기이다. 목탁은 불자(佛子)들의 성물(聖物)이다. 목탁경세(木鐸警世)란 말이 있다. 목탁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늬우치고 원심(怨心)과 분심(憤心)을 경계하며 인과응보의 무서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 목탁이 주는 교훈이란다.

 탁발은 참선(參禪)처럼 스님들이 해야 하는 수련의 한 과정이다. 스님들은 이 집 저 집, 이 마을 저 마을을 구름처럼 나다니며 탁발을 한다. 목탁을 두드리며 삽짝을 들어서는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집들도 있지만 욕지거리를 해대며 푸대접하는 중생들도 이따금은 있었다. "저기 중 온다. 삽짝 닫거래이!"  "일하기 싫어서 중질해 처먹는 게을러빠진 놈들!" 온갖 막말과 험담이 돌아서서 삽짝을 나서는 스님들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스님들은 그 아름답지 못한 고약한 소리들을, 바람소리와 시원스레 흐르는 시냇물소리처럼 맑고 고운 소리로 정화시켜가며 한 치 두 치 그렇게 수련을 쌓아갔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큰 매형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 평양사범을 졸업하신 큰 매형은 일제강점기 때 첫 발령을 이곳 문경으로 받은 듯 했다. 미군정을 거친 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2년 뒤에 일어난 동족상쟁의 6.25내전은 1천만 이산가족을 탄생시켰다. 동족이 동족을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어 놓은 휴전선! 1천만 이산가족들은 그 휴전선으로 인해 지척에 가족을 두고서도 서로 만나 볼 수가 없었다. 큰 매형도 그러한 이산가족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큰 매형이 속리산 북쪽 아래에 있는 용화초등학교에 근무하실 때였다. 가을인 듯 했다. 졸업반 아이들과 함께 보은 법주사로 수학여행을 다녀오신 듯한 큰 매형이 누님과 함께 집에 들리셨다. 누님이 들고 오신 이런저런 선물 중에는 동그란 목탁도 끼어있었다.

 두드리면 통, 통, 통 하고 맑은 소리가 나는 목탁이 참으로 신기했다. 아무래도 저 목탁 속에는 맑고 고운 소리를 내는 소리꾼이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조그만 구멍속을 들여다 보았지만 까만 어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살 수가 없었다. 목탁속에서 울려나오는 아름다운 소리의 정체를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나의 집념은 결국 목탁을 목침 위에 올려놓고 쪼개고야 말았다. 그때가 아마 일곱 살 쯤 되었을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쪼갠 목탁 속에서는 나온 것이라곤 조그만 허공뿐이었다. 목탁은 쪼개졌고 겁이 덜컥 났다. '어쩐다!' 궁리 끝에 쪼개진 목탁을 밥풀로 붙이기로 했다. 밥알을 짓이겨서 쪼개진 목탁을 감쪽같이 붙여놓았다. '됐다!'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은 후 윗 목에 놓여있는 목탁을 가족 중에 누군가가 두드렸다. 쪼개진 목탁에서 제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통, 통, 통 하는 맑은 소리대신 턱, 턱, 턱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어라?" 하며 목탁을 더 세게 두드려댔다. 목탁은 그만 쩍하고 갈라졌다. 쪼개진 목탁을 돌려가며 이리저리 만져보던 가족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부뜰이가 목탁 쪼개 놓았구만." 큰 누님이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목탁경세! 마음을 맑고 밝게 정화시켜 준다는 목탁소리. 가슴에 손을 얹고 오늘 하루의 삶을 반추해 본다. '무심코 한 말과 행동이 혹, 남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지는 않았는지'를.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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