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보법탑은 어디로/박하식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1. 29. 20:38

그 후 비로사 신도회와 향토사학자 송지향 선생이 광고지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보법탑을 찾는 사연을 중앙 일간지에 보도도 하고 수차 호소도 해보았지만 무명인의 외로운 외침은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메아리만 칠뿐이었다. 범인은 오리무중으로 잡히지 않았고' 보법탑은 세월이 흘러도 비로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도망간 비로사 주지는 '보법탑을 팔아먹은 업보로 피해 도망 다니다가 그 죄로 이듬해 죽어 입적했다. 보법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이재능 씨가 죽은지도 이미 오래다. 송지향 선생도 하늘나라로 가시고 없다. 이제는 분통을 터뜨릴 사람도 없다. 이곳 사람들의 역사 의식 속에서 이젠' 보법탑은 까맣게 잊혀져 가고 있다.

"향토 소설가 박하식의 단편소설 '보법탑은 어디로' 중에서"

 

소설가 박하식은 선배 작가다. 1938년생인 그는 1987년 단행본 「이승의 옷」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내가 2013년 시로, 2016년 동시로, 등단했으니 박하식은 대선배 작가이다. 나이도 나보다 아홉살 위다. 그래서 사석私席에서 만나면 '선배님' 이라고 깍듯한 존칭을 붙인다.

소설 '보법사는 어디로' 는 픽션이 아닌 팩트이다. 소설의 상당부분이 자전적 얘기로 채워졌고 보법탑은 비로사 경내에 있었다는 탑이기 때문이다. 또 소설 속의 인물들 역시 성씨만 영문 시그널을 붙여 익명 처리했을뿐 실존인물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한 인물인 향토사학자 송지향 선생은 금계중학교 한문교사였다.

박하식은 전직 언론인이었다. 대구에 있는 M신문사 기자였다. 기자는 마음만 먹으면 눈 한 번 질끈 감고 세상과 야합하면 인생길 탄탄대로가 보장되는 마술 같은 직업이다. 평생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아가며 가솔 거느리고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다. 그 불변의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곡필曲筆을, 곡학아세曲學阿世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든줄에 접어던 지금도 그는 자괴하고 있다. 현직 기자였을 때, 2탄 3탄 연이어 필봉을 휘둘렀더라면 보법탑이 비로사 경내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그는 거대한 힘에 휘말려 그 일을 못했다고 소설 속에서 자탄하고 있다. 외풍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했던 자신의 나약함을 철저히 자괴하고 있다.

그래도 대한민국 소설가 박하식은 누가 뭐래도 올곧게 세상을 살아온 작가다. 자전적 소설 '보법탑은 어디로' 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배 작가 박하식을 존경한다. 작가의 명예와 양심을 생명처럼 존중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후배의 귀감이 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1975년 12월에 고향인 문경에서 영주로 직장따라 흘러온 객지사람이다. 그러나 고향에서 살아온 29년 보다 영주에서 살아온 세월, 42년이 훨씬 더 많으니 이젠 나무랄데 없는 영주사람이다.

박하식은 우리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고있는 한동네 사람이다. 해서 무료할 때 놀러가는 학유정鶴遊亭에서 이따금 만나는 정겨운 이웃이다.

박하식은 그의 소설 '보법탑은 어디로' 에서 보법탑은 경주불국사의 다보탑, 석가탑과 비교해도 문화재적, 예술적, 가치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옛 문헌을 인용해가며 주장했다. 그런 가치있는 문화재를 돈에 눈이 어두운 주지승이 팔아먹었다고 한탄했다.

한마디로 6.7십년대인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이다.

'길따라 물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궁닛꺼리/문경아제  (0) 2018.02.01
어느 해 가을날/문경아제  (0) 2018.01.31
소중한 친구들/문경아제  (0) 2018.01.28
정년퇴직 하던 날/문경아제  (0) 2018.01.28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0) 2018.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