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궁닛꺼리/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2. 1. 10:55

'궁니꺼리'는 '군것질거리' 의 경상도 문경지방 사투리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적, 5, 6십년대에는 사는 게 다들 고만고만 했습니다. 일테면 가난의 평준화였지요.

사는 게 엇비슷한 그 시절에도 마을엔 밥술꽤나 먹는 집들도, 소리치게 잘 사는 집도 있었습니다.

몇 집 건너 이웃이었던 창식이네는 아주 가난했습니다. 식구가 열하나나 됐습나다.

창식이네 집은 야트막한 산, 뒷산아래에 있었습니다. 집 뒤안인 산아래엔 고욤나무가 몇 그루 있었습니다. 문경지방에서는 고욤을 고얌이라고 했습니다.

서리가 내릴즈음에 창식이 아버지는 고욤을 털었습니다. 창식이 엄마는 고욤을 주어모아 크다란 단지에 갈무리했습니다.

겨울밤 창식이네 집에 놀러가면 창식이 엄마는 고욤을 한 그릇 퍼왔고 우리 꼬맹이들은 동무들에게 뒤질세라 앞다퉈가며 고욤을 퍼먹어 댔습니다. 숙성이 잘됀 고욤은 맛이 기가막혔습니다.

손꼽아보면 60년이 다 되어가는 까마득한 어릴 적의 아련한 옛 얘기입니다.

나보다 두 살 적은 창식이는 부산 그 어드메에서 살고 있습니다.

해마다 겨울이 오고 긴 겨울밤이 찾아오면 달짝지근한 고욤국을 다퉈가며 퍼먹던 동화 같든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가난했던 시절 군것질로 먹어대던 그 기막힌 맛, 고욤맛이 그리운 추억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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