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코피가 터지다/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1. 21. 11:03

어젯밤, 열시가 조금 넘어 샤워를 했다.

자기 전에 따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나면 그 뒷맛이란 바로 날아가는 기분, 그것이었다.

샤워가 거의 끝날무렵 코가 건질거렸다. "팽!" 하고 코를 풀었다. 그랬더니 젠장 코피가 터졌다. 터진 코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져내렸다.

'에그, 하루 이틀 고생하게 생겼구나.'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화장지로 코를 틀어막고 방으로 들어와서 누웠다. 5분쯤 누워있으면 코피가 멎기때문이었다.

 

어릴 적, 쌈할때엔 상대방 코를 겨냥해서 주먹을 내지르곤 했다. 코피를 터트리면 이기는 줄 알았고 코를 맞아 코피가 나면, "으앙!" 하고 울면서 졌다고 승복하기 때문이었다.

코는 동네개구장이 싸움꾼들에겐 반드시 지켜야할 전선이었고, 반대로 꼭 뺏아야할 고지였다.

 

젊은시절부터 코피가 잘 터지곤 했다. 걸핏하면 터지는 코피때문에 곤욕을 치루곤 했다. 아침 출근무렵 코피가 터지면 한 10여 분쯤 누웠다가느라고 출근시간을 겨우 맞출때도 있었다.

마흔이 좀 넘어서였다. 집사람이 말했다. 앞집 현진이도 당신처럼 코피가 잦기에 이비인후과에서 코의 실핏줄을 지지고 오니 괜찮다하더라고. 현진이는 그때 열두 살, 초등학교5학년이었다. 우리집 막내 곰돌이 친구였다.

집사람 말을듣고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원장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적은 듯한 새파란 의사였다. 사정을 듣고나서 원장이 말했다.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 용변을 보고 손을 씻고 무심결에 세수를 했다. "아차, 실수했구나!" 하고 후회를 했을 땐 이미 늦었다. 코에서는 어젯밤처럼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전날 코피가 났을 때는 이틑날 아침에 얼굴에 물을 끼얹기만 해도 코피가 난다는 사실은 살아오면서 터득한 경험이었다.

어젯밤처럼 코피가 멎을때까지 분초를 다투는 출근시간에 또 몇분간의 시간을 누워있어야 했다.

얼마뒤,

코피가 날까봐 고개를 잔뜩 뒤로 제치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열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댔다.

 

저 높은 곳에 계신 비롯음과 끝이 없는 분이시여!

죄많은 이 생명, 남아있는 인생여정이 얼만지 모르겠나이다. 당신께 비옵니다. 그길 다 걸어갈때까지 당신께서 만드셨다는 우주의 법칙과 질서, 잘 지키며 살다 당신 찾아가게 해주소서. 그러나 제 뜻이 아닌 당신 뜻대로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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