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퇴근길에서였다. 동부맨션을 지나 선사시대 유적 앞을 돌아 올때였다.
또래에 조금 못미치는 남정네가 다가오더니 말을 걸어왔다. '나를 잘 아는 지인으로 착각했나?'
해대는 거동으로 보아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여게로 이사왔니더. 여게 사니껴?"
"축하하니더. 아니요 꽃동산 사니더."
"난, 전국구니더."
"아, 예! 대단하니더."
그 나이가 되도록,
'전국구인 자기를 왜 몰라보느냐?' 상대는 그런투였다. 술냄새를 확확 풍겼다. 친구만나 술 한 잔 제대로 했는지 사내는 기분이 아주 좋은 듯 했다. 손에 들고가던 귤봉지를 가리키며, "한 개 줄까요?" 했다. "괜찮습니다. 한 잔 하신 것 같은 데 조심하구려." 그렇게 대답하며 사내와 헤어졌다.
취객을 만날까봐 늘 큰길로 다니곤 했다. 어울려 쌈하는 술주정꾼들이 시비라도 걸어오면 난감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젯밤 퇴근길에 만난 남정네는 술냄새, 사람냄새를 제대로 풍겼다.
아침, 이부자리 속에서 몇줄의 글을 쓰며 그 남정네 떠올리며 싱긋 웃어본다. 좋은 아침이다.
'미니 픽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동산/문경아제 (0) | 2018.01.20 |
---|---|
바람막이/문경아제 (0) | 2018.01.15 |
딸아이 생각/문경아제 (0) | 2018.01.05 |
울보 공주님.1/문경아제 (0) | 2018.01.05 |
한밤의 단상(斷想)/문경아제 (0) | 2017.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