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울보 공주님.1/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1. 5. 14:49

옛날 얘기다. 옛날이라해서 옛날 옛적이 아닌 수년 전 얘기다.

점심을 먹고나면 스르르 눈이 감기는, 어느 해 늦은 봄날 오후였다.

한 손엔 쓰레바퀴통을, 또 한 손엔 집게를 거머쥐고 외곽도로를 한바퀴 돌아 초소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날씬한 엄마 뒤를 다섯살쯤 된듯한 꼬마 아가씨가, "앙앙!" 울며 따라가고 있었다. 꼬마 아가씬 빨간 티셔츠에 폭이 헐렁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앙앙 거리며 우는 입도 예쁘게 보였다.

말을 걸어보았다.

"조렇게 이뿐 아가씨가 입 찢어지게 왜 저리 우노?"

엄마의 대답이 이외였다.

"조 아래 길가에 참새떼가 놀고 있었다 아입니까."

"그랬는데요?"

"우리집 고집불통 저 아이가 같이 놀자고 다가갔다 아입니까!"

감이 잡혔다. 그러나 모르는 척 하고 되물었다.

"그켔더니요?"

"아저씨도 참! 참새도 그냥 있습니까? 포롱! 하고 다 날아가버렸지. 그래서 저리 운다 아입니까!"

"자라면 시인되겠네요."

"예에?"

"감수성이 풍부하니까요."

"에그, 아저씨 말씀을 위안으로 삼아야겠네요."

몇동에 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906동에 산다고 했다.

 

그때의 고 맹랑한 꼬마 아가씨도 이제 초등학교 삼 사학년은 되었겠다. 어쩌면 우리집 큰 손녀딸 신우하고 동갑내기 열한살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들 얼굴에 웃음을 만드는 미소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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