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모란꽃/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12. 7. 11:57

27년 전, 우리집 옆방엔 미림이네가 살고있었다.

미림이는 당시 다섯살이이었다. 미림이는 동네 제일의 개구쟁이었다.

미림이는 조그만 간장단지 뚜껑을 열어버리고 모래를 담아놓을 때도 있었고 우리방에 몰래 살금살금 들어와 집사람 화장품을 꺼집어 내어 입술에 빨갛게 바를 때도 있었다.

그를 때마다, 미림이의 조그만 엉덩이는 엄마에게 두드려 맞아 빨갛게 불이붙곤했다.

미림이 엄마는 "요노무 기지바 말썽부려 못살겠네!" 라고 "깩깩" 소리를 질러가며 고 조그만 엉덩이를 두드려대곤 했다.

어느날이었다.

미림이네 방안에서 보욱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보욱이는 미림이 동생이었다. 세살이었다. 떼까치짖는 둣한 미림이의 또라진 목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왔다.

"요노무자식이 신경을 쓰잖아"

미림이가 앞뒤도 안맞는 얘길 쫑알거리며 팥잎보다도 더 작은 손바닥으로 "찰싹!" 소리가 나도록 보욱이 볼따구를 올려부쳤다.

얘긴즉슨 이럴 것이다. '울지 말고 잘놀 것이지 울긴 왜울어 누나신경을 거슬리게 하느냐'

그날따라 미림이는 억수로 재수가 없는 것 같았다.

미림이가 동생 보욱이를 응징하는 그 꼴같잖은 모습을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으니 말이다.

"요노무 기지바가 또!"

미림이는 전과가 있는 듯했다. 재범인지 삼범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중처벌을 받는 누범임은 분명해 보였다.

엄마는 하이얀 곶감분이 나도록 "찰싹" 소라가 들리도록 미림이 볼따구를 올려부쳤다.

"보욱이가 내신경을 쓰게했단 말이야"

먼지가 뽀얗게 묻은 입술을 달싹이며 입을 놀려대 미림이는 또 매를 벌고 말았다.

"요노무 기지바가 그래도."

미림이 볼따구에서는 또 다시 하얀 곶감분이 피어올랐다.

 

봄이었다.

담장아래엔 모란꽃이 피어났다. 빨간 모란꽃은 너무도 고왔다.

마당에 놀고 있던 미림이가 쪼르르 집사람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꽃 안땄어. 빛나가 땄어!"

모란꽃이 눈깜짝 할 사이에 사라졌다.

범인은 미림이가 분명했지만 심증뿐이지 물증이 없었다.

미림이는 말도 잘 못하는 세살배기 앞집 밫나에게 뒤집어 씌우며 그렇게 발뺌을 했다.

"니가 땄지. 빛나가 안 따고 니가 땄잖아. 맞지. 니가 땄지."

집사람이 오금을 밖았지만 미림이 대답은 한결같았다.

"빛나가 땄다니까."

'사람이건 짐승이건 이웃을 잘 만나야 된다니까. 그래야 덤탱이를 안 쓴다니까.'

미림이네는 우리집에 삼년을 살다 멀리 울산으로 이사를 갔다. 미림이 아빠가 시내버스운전기사로 취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미림이는 이제 서른둘은 되었겠다. 아이들 엄마 되었겠다.

미림이 아빠는 오토바이타고 어딜가다 트럭과 충돌해서 오십줄 젊은 나이에 생을 접고 말았다고 바람결에 소식이 들려왔다.

"에그, 저런! 울산으로 이사가지 말고 집살 때까지 우리 옆방에 살며 영주에서 지냈으면 좋았을 걸."

미림이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집사람은 그렇게 중얼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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