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귀또리/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11. 9. 09:05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올려다보니 여덟시 반이 넘었다.

폰에 글 몇줄을 쓰고있는데 집사람이 불러댔다.

"여기좀 나와보래요. 거민가 뭐가 있어요!"

"알았어. 옵 입고."

"도망간다니까.그냥 나와요."

"뭐가 있다고 난리노!"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거실로 나갔다.

거실바닥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죽치고 앉아있었다.

우리집 거실엔 귀뚜라마도, 그르마도, 이따금 출현한다.

딸아이가 집에 있었을땐 그르마가 나타나면 난리를 피우곤 했다.

다리가 무수히 많은 그르마는 성성하게 생겼다. 자세히 보면 재밌고 귀엽기만한 곤충이다. 그르마는 이충이다.

"아빠! 저기 뭐래요. 징그럽고 무서워."

딸아이는 그르마를 보고 호들갑을 떨곤했다. 그런 딸아이가 작년 겨울 짝찾아 가버렸다.

 

"귀또리도 모르남!"

집사람은 검연쩍은 지 빙그시 웃었다.

저 귀뚜라미는 화장실이나, 주방 싱크대 아래나, 아님 열려있는 주방문밖으로 나가 어디서던 저 편한대로 살터이다.

주변에서 제일 꺼벙한 우리집은 이렇게 친환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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