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꽃동산/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1. 20. 12:31

 

 

 

 

어젯밤, 퇴근할땐 꽃동산으로 돌아왔다.

겨울밤속의 꽃동산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꽃동산에 도착해서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붕어빵 2천어치를 샀다.

늦은 밤인데도 꽃동산로터리엔 택시와 승용차, 화물차와 버스가 쉼 없이 돌아갔다. 차가 돌아갈때마다 꽃동산의 모습을 폰에 담느라고 나는 손을 잽싸게 움직였다.

꽃동산로터리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저 빨간 십자가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목숨보다 더 중히여기는 성물聖物이다. 예수가 설파한 그 유명한 산상수훈山上垂訓의 진리도 저 십자가 속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얼마전에 시청에서는 영주시 스토리텔링 3집인 '선비고을 이야기 여행' 을 발간했다. 13명의 작가가 출품한 16편의 작품가운데 한 편인 '꽃동산'에만 배경 삽화가 실리지 않았다. 십자가가 서있는 사진을 배경삽화로 내보냈다가는 종교적인 형편성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게 출판사측의 설명이었다.

꽃동산로터리를 바라보며 43년 전, 영주남부국민학교에 근무했던 신명희 선생을 떠올려본다. 신명희 선생은 43년 전인 1974년 봄, 나와 함께 가흥교 아래 한갓진 곳에 원조 꽃동산을 만들었다. 당시 4학년 3반 담임이었던 신명희 선생은 어느 날 자연시간에 아이들을 데려와 백일홍과 봉숭아, 과꽃과 맨드라미, 채송화와 키다리꽃 해바라기 세포기를 나와같이 심었다. 서너 평 정도의 원조 꽃동산은 가흥교 아래 한갓진 곳에서 그렇게 태어났다. 우린, 그렇게 만들어진 꽃동산 한복판에, '꽃동산' 이라고 팻말을 세우고 "하하하 호호호!" 웃어 제쳤다.

 

그로부터 만 43년이 훌쩍 지나갔다. 스물일곱이었던 내가 일흔에 귀 하나가 붙어버린, 예쁜 두 손녀딸을 거느린 할부지가 되었다.

초등학교 5년 후배였던, 나와함께 원조 꽃동산을 만들었던, 신명희 선생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대구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퇴임했다는 신명희 선생이 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젊은 시절 앞 뒷집에서 셋방살이 함께하며 "오빠 오빠!" 부르며 따르던 누이같던 신명희 선생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래, 명희야! 어디에서 살던 잘 살어려무나. 젊은 시절 품었던 고운 꿈 간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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