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우리집/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12. 17. 10:20

 

 

 

 

 

 

우리 집은 영주교회 부근, 효성빌라 앞에 있다. 대지 42평에 건평 21평인 자그마한 집이다.

 

1986년, 마흔 살 때 지은 지 삼년 된 집을 사서 이사 왔다. 그때만 해도 사람도 쓸만했고 집도 새집이었다.

 

그로부터 꿈쩍않고 31년을 이 집에서만 살다 보니 집도, 사람도 많이 늙어버렸다. 우리 내외는 이 집에서 아이들 키워 시집 장가보냈다.

 

 

 

어제낮이었다.

 

초소에 쭈그려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귀뚜라미가 나왔다고 했다. 많이 컸다고 했다.

 

지난 늦가을 어느 날, 주방에 난데없이 귀뚜라미 한 마리가 찾아들었다. 귀뚜라미는 거실을, 목욕탕을, 제집 더 나들듯 팔딱팔딱 뛰어다니며 재밌게 놀곤 했다.

 

겨울에 접어들자 귀뚜라미는 보이지 않았다. 추워서 어디로 이사를 갔거니 생각을 했다. 그랬었는데 어제, 목욕탕에 귀뚜라미가 나타났다고 했다. 반가웠다. 많이 커서 돌아왔다니 무척 반가웠다.

 

번쩍번쩍 휘황찬란한 집이었다면 귀뚜라미가 찾아왔을까? 우리 집 거실이 호화찬란했다면, 귀뚜라미가 이웃 마실 오듯 찾아들었을까? 다리쉼하려고 들렸을까?

 

주위에서 가장 꺼벙한 집이지만 귀또리나 그르마 같은 작은 생명이 찾아오는 우리 집!

담장 아래 매실 나뭇가지에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집, 우리 집!

 

집수리 못해 볼품없지만 일하고 돌아오면 고단한 등을 누일 수 있는 스물한 평 우리 집이 그래서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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