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노래

꿈꾸는 백마강/이인권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10. 25. 21:56

 

콩죽으로 아침을 때웠다.

출근해서 보자기 속에 싸여있는 사발뚜껑을 열어보니 콩죽이 들어있었다.

집사람이 컵라면 보다는 그래도 콩죽이 나을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을것이다.

어제저녁 때 먹고 남은 콩죽인 것 같았다.

순찰 한 바퀴 휭하니 돌았겠다 쓰레기장 정리도 끝냈겠다 아침까지 먹었으니 배도 부르겠다 그래,

노래나 한 곡 불러보자.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보자

 

아침부터 왠 노래냐고?

난 노래를 잘 부른다. 그러나 오해는 마시라. 잘 부른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뜻이지 잘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경아제의 노래는 시도 때도 없다. 초소에서도, 집 안방에 벌렁드러누워서도, 자전거타고 가다가도 그저 흥얼거린다.

처녀때 면내의 노래자랑을 휘젓고 다녔던 집사람이 그런 날 보고 이렇게 일침을 놓곤 한다.

"꼭 노래 못하는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저렇게 흥얼된다니까!"

 

1994년 8월28일 나는 부여에 한번 다녀오려고 제천 봉양역에서 충북선열차에 몸을 실었다. 직장일로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공무원생활을 계속 하느냐 아님, 그만두느냐는 기로에 서있었다.

망국의 한(恨)을 가슴에 안고 부소산 기슭 절벽끝에 서서 백마강으로 투신해야만 했던 백제의 꽃잎들! 그 꽃잎들의 고뇌와 번민을 몸으로 느껴보려고 부여로 가고 있었다.

한낱 직장일로도 이렇게 번민과 갈등이 큰데,

나당연합군의 창칼에 쫒겨 부소산 절벽 앞에 서야만 했던 망국, 백제의 꽃잎들!

그 가녀린 꽃잎들은 한 잎 한 잎 낙화되어 저 푸른 백마강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부소산 정상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있는 백화정(百花亭)에 올라 딸아이게 편지를 쓴다.

 

딸아. 우리 딸 선아야!

아빠는 지금 부소산 백화정에 올라 너에게 편지를 쓴다.

오늘 낮에 청주역에 너를 내려놓고 아빠는 조치원을 거쳐 부여에 왔다.

요즘 아빠는 공무원생활을 계속하느냐 아님, 이름도 생소한 한전 자회사 ㅇㅇ산업개발로 이직해야하느냐는 기로에 서있다. 통합공과금제도가 금년 10월에 폐지되기 때문이다.

아빠는 공무원으로 잔류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뜻대로 잘 될런지 모르겠다. 시장과 싸워서 이겨야하기 때문이다. 뜻을 같이하는 우리 시의 요원들과 또 각 시도의 동료직원들과 연합해서 지역단체장과 싸운다면 승산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아빠는 원래 공무원이었다. 1972년 5월에 문경군지방공무원5급을(현9급)로 임용된 공채출신 공무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공무원생활을 아빠의 고약한 유랑벽 때문에 그해 12월에 그만 두었고,

네 할아버지 밑에서 농사를 짓다가 1975년 12월에 일자리 찾아 영주로 나와 KBS징수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랬었는데 1992년 8월 통합공과금제도가 도입되어 영주시기능직10급공무원으로 재임용되어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빠딸 선아야!

아빠는 부소산자락 낙화암(落花巖)에 서서 저 푸른 백마강(白馬江)을 내려다본다. 1300여 년 전, 저 백마강의 고혼(孤魂)으로 사라져간 백제의 꽃잎들을 생각해본다.

사라져간 꽃잎들 중에는 분명, 네 또래 스물한 살 아가씨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아가씨들도 뉘집의 귀한 딸내미였을 것이다.

언제 기회봐서 너도 아빠처럼 낙화암에 서서 백마강을 한번 내려다보아라. 이땅에 먼저 태어나서 살가다 채 피어보지 못한 꽃잎으로 사라져간 고운 넋들의 명복을 빌어보거라.

국문학이든 중문학이든 문학의 근본은 가엾슴이 무엇인가를 고뇌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에 있다는 걸 명심하거라.

아빠는 오늘밤 대전에서 일박(一泊)하고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 함께 생활하는 친구와 정겹게 지내고 밥 잘챙겨먹어라.

잘 놀고 공부도 열심히 하거라. 딸아. 우리 담에는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구나.

    1994. 8.28.

      부소산에서

       아빠가 우리딸 선아에게 보낸다

 

대기발령이 떨어진 나는 그해 10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시청 총무과 통신계장 뒤 의자에 앉아서 뜻을 같이하는 동료 두 명과 대기를 했다.

다음해인 1995년 1월1일부터 시군통합이 되었고 대기발령이 해제된 나는 휴천3동근무를 명받았다.

파란 많았던 공무원생활은 2014년 12월 31일 정년퇴직으로 막을 내렸다.

충북대학 중어중문학과를 나온 딸아이는 시집 안 간다며 그렇게 속을 썩이며 애물단지 노릇을 하더니만 작년 겨울 몰래 사귀어 오던 언놈에게 시집을 가버렸다. 앓던 이 모양 딸아이가 시집가면 속이 홀가분 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

구곡간장 오로지 찢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으리

 

언젠가 낙화암에 다시 서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리라. 백마강을 내려다보며 꽃잎되어 떨어져간 고운 넋들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빌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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