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문경아제 상경기/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10. 18. 20:49

 

 

 

 

 

 

 

 

 

 

 

 

 

 

 

 

스마트폰 알람이 운다. 그만 자고 일어나라고 끈질지게 울어댄다.

비번날은 늘어지게 자야할 텐데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아산병원에 채혈이 예약되어있어 한양에 다녀와야 되기 때문이다.

'에이, 남들은 안 아프고 잘도 사누만.우리 내외는 왜 맨날 이렇게 번갈아가며 아프다 하노.' 그렇게 혼잣말처럼 궁시랑되며, "갔다올게!" 자고 있는 집사람 뒷꼭지에다 인사를 건네고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선다. 2km쯤 떨어져있는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자전거로 가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도솔봉,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소백의 영봉 위엔 까만 구름으로 가득하다. 비가 오려는 모양이다. 우산을 챙겨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던다.

이 길,아산병원 가는 길! 2003년 3월부터 일년에 많게는 서너번, 적게는 두어번씩 오갔으니 올해로서 꼭 14년을 이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는셈이다.

3, 4십대 중장년시절, 부어라 마셔라 한 폭음으로 간장이 망가졌고, 젊은 시절의 그 쓰잘데 없는 객기로 나이들어 이렇게 생고생을 하고 있으니 그 누구를 원망하리오. 절제없이 객기를 부려되었던 젊은 날의 내 자신을 원망해야지 그 누구를 원망하리오.

눈을 감았다 떴다하는 사이 버스는 이미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한강! 한강은 언제부터 저렇게 유유히 흐르고 있었을까. 모르긴 해도 천지개벽을 하고 난 뒤 땅의 모양이 짜여지고 생명이 태동하고 나서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저 푸르른 한강수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생명의 근원인 물을 공급해주고, 들판이 살찌도록 물을 흠뻑 적셔 주며 끊임없이 흘렀을 것이다. 

한강변에 휘 늘어진 버들가지는 싱그럽기 그지없다. 언제 보아도 운치가 넘쳐난다.


한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

어젯밤 이슬비에 목메어 우는구나


그 옛날 심연옥이 부른 '한강'을 입속으로 흥얼거려본다.

나보다 일곱 살 더 많은 우리 집 둘째누야가 잘 불렀던 노래다.

 

잠현초등학교 울타리에 걸려있는 동시는 언제 어느때 보아도 좋다.이른 아침에 보아도 좋고, 늦은 저녁때 보아도 좋다. 비오는날 보아도, 눈오는날 보아도, 그 언제 보아도 상큼하다. 맑고 밝고 환하다.

다리난간에 기대서서 성내천을 내려다본다. 일년삼백육십오일 그 어느 때 보아도 성내천 물은 까맣다.

저 새카만 물에서도 물고기는 살아간다. 물고기가 살아가니 청둥오리가 떠다닌다. 성내천에 노니는 물고기와 청둥오리의 뱃속은 아주 까말 것이다.

영주 서천 폭포아래에 노니는 해오라기는 물고기 한 마리 꿀꺽삼키고 짝다리 짚고 서서 히죽히죽 웃는다.

까맣게 오염된 성내천에 사는 청둥오리도, 서천 맑은 물에서 물고기 꿀꺽하고 히죽히죽 웃는 해오라기도, 다 그네들 팔자대로 살아간다. 사람이든 미물이든 팔자를 길들이는 재간은 스스로의 몫이다.

 

병원에 들어서기만 하면 기가 팍 죽는다. 의사가 하느님만큼이나 높아보이기때문이다. 병원에선 숙맥(菽麥)이 되면 편하다. 진료비 수납도, 잡다한 모든 일도, 도우미에게 부탁하면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잘 몰라 더듬거리는 것보단 그것이 훨씬 낫고 효율적이다.

돌아오는 길은 늘 그랬듯이 포장마차에 들린다.

가락국수가 있을 것 같아 들렸더니 없다. 도너츠 두개와 꽈배기 한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대학생인 듯한 앳띤 아가씨에게 물어보았다. 쌀가루를 반죽하여 도너츠를만들고 있는 오십대초입에 들어섰을 듯한  남정네를 가리키며 두 분이 부녀사이냐고 물어보았다. 아가씨는 그렇다고 했다. 사장님은 어느분이시냐고 재차 묻자 아가씨는 생긋 웃으면서, "엄마요!"하고 대답을 한다.

손발이 척척 맞는, 살가운 사랑으로 삶을 이끌어 가는 가내기업이 보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준다.

강변역사의 계단을 한 계단 또 한 계단을 천천히 내려선다. 저 계단쯤은 훌훌 뛰어다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계단 오르내리기도 부담으로 느껴지는 일흔이 넘은 노인네가 되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서울에 사는 친구 무선이에게 전화를 넣는다.

"나 동한이. 아산병원에 채혈예약이 되어있어 병원에 왔다가 지금 내려가는 길이네. 잘 있었지."

"벌써 차를 탔는가?"

"그럼."

"사람도 참. 올라 온다고 연락하면 얼굴이나 한번 보지. 밥이라도 같이 먹지. 무심한 사람같으니라고."

"그래. 내 담에 올라오면 꼭 연락함세."

 

한 세상 함께 살아가는 벗 . 손잡고 먼 길을 함께 걸어갈 수있는 벗이 있다는 게 그 얼마나 좋은 일이랴!

동행(同行)의 의미를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