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까지 연휴라지만 추석이 지난지는 오늘로서 삼일째다.
아침, 눈비비고 출근해서 순찰 한 바퀴돌고 쓰레기장에 나가보았더니 기가 막혔다. 머리가 긁혔다. 분리않고 뒤죽박죽으로 버려진 쓰레기들로 쓰레기집하장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치우려고 해도 엄두가 안 났다.
'그래, 아침밥이나 먹고 한숨돌리고 치우자.' 그렇게 맘을 먹고 초소로 돌아왔다.
도시락엔 한끼 식사로 먹을 만큼의 송편이 들어있었다. 도시락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붓고 난로에 얹어놓았다. 이렇게 해두면 15여 분 뒤면 먹기 알맞게 떡이 쪄진다. 이 방법은 오랜 경비원생활에서 얻은 노하우다.
그렇게 아침을 떡으로 때우고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어찌 되었건 내가 해야할 일이다!' 눈 딱 감고 입, 코 막고 그 많은 쓰레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냄새 한번 맡을만 했다.
'알속을 저네들이 다 빼먹고 쓰레기만 주네.' 숱하게 많고많은 빈 선물박스를 정리하자니 그런 생각도 스쳐갔다.
그 많은 쓰레기를 정리하고 초소에 들어오니 아홉시 반이 넘어섰다. 쓰레기 치우는데 두시간 반 이상이 걸렸던 것이다.
해가 갈 수록 인정이 메말라 간다. 올 추석에는 그 흔하디 흔한 양말 한쪽도 주는 이 없다. 추석명절 쇠었다고 떡 한개, 부치게 한 접시 가져오는 집도 없다. 인간적으로 서운했다. 받아서 맛이 아니다. 선물이란, 인정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표이다. 댓가성이 없는 선물과 인정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가 된다. 그리 생각을 하면서 추석 하루전에 초소에서 함께 근무하는 반대당무자 송 선배에게 양말 두쪽을 선물했다.
그렇게 서운해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예" 대답을 하며 문을 열어보았더니 101동 1*03호 아지매가 서있었다. "아저씨이, 이거 간식하세요."
아지매는 들고 있던 까만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간식거리요."
비닐봉지 안에는 사과 두개와 포도 한송이가 들어 있었다. 달콤한 내음이 좁다란 경비실에 가득찼다.
밤여덟시쯤이었다. 쓰레기장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아저씨!" 하고 부르기에 돌아보았더니 103동 사는 현우 엄마가 뱅긋이 웃음지며 서있었다."
"아저씨, 추석 잘 쇠셨어요. 초소 문앞에 배 몇개 갖다놨어요. 심심할 때 드세요."
현우엄마는 내글의 독자이다.
"그래요. 고마워요."
초소앞에 놓여있는 종이봉지 안에는 커다란 밥사발만큼이나 될성싶은 배 세개가 들어있었다.
"현우엄마,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현우엄마는 생긋이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 이 아름다운 밤에 노래 한곡 부르자. 십팔번곡 '외나무다리' 를 부르면 좋겠지.
나와는 앙숙지간인 까만 알록고양이가 어디선가 숨어있다 열려진 창문 사이로 새어나가는 내 노랠 들어면 이럴 것이다. '어유, 저것도 노래라고 부르나. 저 영감탱이 오늘도 맛이 갔꼬만. 덜 떨어진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꼴같잖은 고양이에게 핀잔듣고 그냥 있을 내가 아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절제공(節齊公) 김종서(金宗瑞)대감의 후손이 아니지. 순천(順天) 김문 후예가 아니지. 맞불나야 순천 김문의 후손, 문경아제 김동한이지.
"야, 이 자슥아! 니 뭐라캤노? 너 이 자식, 그카만 니캉내캉 한 마당에 같이 못 산대이. 이 자슥아, 내사 노랠하든 양산도를 하든 니가 왜 참견인데. 망할노무 자슥, 조용히 입 닥쳐라. 쫒겨나기 전에. 쫒겨나 구역 잃으면 너는 갈곳이 없는기여. 쫒겨나고 난 뒤에 초소문 두드리며 꼬리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아저씨! 잘못했어요. 한번만 용서해주세요.하고 애걸복걸 해봐야 그때는 이미 늦은 기여. 알간?"
그렇게 알록이 기를 팍 죽여놓고 눈 지그시 감고 영주고을 꽃동산 가수 문경아제가 그 좋은 목청으로 외나무다리를 감아 넘긴다. 이절까지 부르면 앵콜소리에 귀가 멍멍해질테니 목청가다듬고 일절만 불러본다.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만나면 즐거웁던 외나무다리
그리운 내사랑아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속에 간직한 꿈을
못잊을 세월 속에 날려 보내리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결코 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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