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해좀 봐요/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9. 20. 11:20

 

 

 

 

 

 

 

 

 

 

서쪽하늘 끝자락에 한장, 두장, 먹구름이 모여던다. 해대는 낌새가 소나기라도 한줄기 내리려는 모양이다.

영주는 서쪽하늘이 까맣게 변하면 어김없이 비가온다.

아니나다를까."우르르쾅!"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번쩍" 하고 번개가 친다.

천둥과 번개는 바늘과 실처럼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이다.

바늘과 실이 인간에게 긍정적이라면 천둥과 번개는 부정적이다. 음과양의 차이다.

"에그머니나!"

쓰레기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슬기엄마가 기겁을 하고 현관안으로 도망치듯 빨려들어간다.

"클날뻔했네"

억수같이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혀를 쏙 내미는 슬기엄마를 승강기가 "휙" 하고 낚아채 가버린다.

"쏴아!" 소리도 요란하게 소나기가 쏟아진다. 겁나게 쏟아진다.

"에이, 놎쳐버렸네. 비러먹을 한발짝 늦어뿌렸네."

먹구름속으로 숨어버린 천둥이 아쉽다는 듯 그렇게 궁시렁댄다.

한발짝만 빨랐어도 슬기엄마를 홀랑 적셔버렸을 텐데, 놎쳐버려 알찌건하다는 천둥의 넋두리다.

"망할노무자식, 꼭 생긴대로 시커멓게 논다니까. 놀부같은 놈, 산도적 같은놈. 저러니까 밉상이지."

비를 피해 가족과함께 쉼터 앞 느티나무 아랫가지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참슬이 엄마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쫑알댄다.

 

작년 여름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소나기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날은 요행스럽게도 비그친 하늘엔 쌍무지개가 곱게 떠올랐다.

그 귀한 쌍무지개가 동산아파트 하늘위에 곱게 떠올랐다.

무지개를 맨 먼저 본 사람은 어른이 아니고 아이였다. 여섯 살 꼬마아가씨 단아였다.

"어~ 저기 무지개있다."

단아가 가르키는 동쪽하늘엔 '빨, 주, 노, 초,파,남, 보' 일곱 빛깔의 쌍무지개가 곱게 곱게 피어올랐다.

누군가가 단아에게 물어보았다.

"니가 무지개도 아니?"

단아 아빠가 대신 대답했다.

"야요. 무지개 알아요."

 

사람들은 단아가 가리키는 동쪽하늘을 올려다보며, "어~ 무지개 떴네!" 하며 반가워했다.

스마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로부터 무지개는 그처럼 귀빈대우를 받았다. 무지개는 행복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지개는 사람들곁에 그리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인간하고는 촌수가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똑같은 소나기일지라도 가을소나기 뒤끝에는 무지개는 생기지 않는다.

기온이 낮아 수증기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세좋게 그렇게 억수같이 퍼부어 대던 소나기는 이내 그쳤다. 하늘은 개였다.

하늘은 옅은 황갈색으로 변해있었다.

해가 보였다. 소나기가 지나가버리자 잠시 짬을내어 김칫국에 밥말아 먹은 해가 삽짝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고운 벽돌색이었다. 해의 얼굴은 선명하고 고왔다.

"저어기 해좀 봐요."

상큼이 엄마를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예, 참 곱네요!"

"곱지요. 참 곱지요."

상큼이는 스물세 살쯤 된 아가씨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나간다.

상큼하고, 발랄하고, 시원시원하고, 훤칠하게 잘 생긴 아가씨다.

"엄마보다 더 크네!"

언젠가 엄마와 함께 걸어가는 상큼이를 보고 그렇게 말했더니 모녀가 나를 쳐다보며 "하하하" 웃었다.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벌써 몇년이 지난 일이었다.

"톡톡톡톡!"

뛰어오는 발자욱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멈춰섰다. 상큼이엄마였다.

"이거요!"

손에는 포도 두어 송이가 들려있었다.

"아 예. 잘먹을게요."

아침부터 온종일내내 나무베고 묶고, 그기에다 쓰레기장 그 많은 쓰레기와 씨름을 했더니만,

몸이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걸음 한발짝 떼어놓기조차 싫을맘큼 피곤했다.

그러나 물에 젖은 솜처럼 피곤한 몸을 치유해주는 이웃의 살가운 정이 있기에,

아파트경비원이라는 직업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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