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내고향 문경 가은엔 매달 4일과 9일에 장이섰다.
지금도 가은장은 그렇게 변함없이 선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주 바쁜 농사철이 아니면 장날이면 어김없이 장엘 가셨다.
아침나절쯤에 장에 가신 아버지는 꼭 어둠어둠 해서야 집으로 돌아 오시곤 하셨다.
"부뜰아!" 하고 내이름을 부르며 아버지는 삽짝을 들어서곤 하셨다.
장판에서 이웃마을 친구나 먼 친척만나 권커니자커니 그렇게 술을 드셨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했다.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비번날이면 나도 꼭 장에 들린다.
내가 찾아가는 장은 닷새만에 서는 오일장이 아니고 날마다 서는 매일장이다.
장판엔 그 옛날의 가은장처럼 얼큰한 국밥이나 텁텁한 막걸리가 없다.
대신 절친과 선배, 김이 모락모락나는 커피와 마흔 여덟장 놀이기구가 있다.
"여보게, 점심해야지!"
"또 화투치러 갈라고 그러지."
"일찍가서 목좋은 데 자리잡아야 돈따지."
"에그, 내가 못살아!"
반건달 남정네와 살아가는 안사람들은 늘 불평 불만을 하면서도 그려려니 하며 한 세상살아간다.
내집 사람이고 당신네 집 사람이고 그러기는 매일반이다.
안팎으로 다 늙은 지금에 와서 남정네 길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기고 와야 될 낀데!'
그렇게 중얼대며 대문을 나선다. 한낮의 가을하늘이 물색없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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