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아버지의 고독/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9. 3. 13:12

 

어젯밤엔 막걸리 한 잔 했다.

동네 마트에서 막걸리 한 통을 받아와 커다란 잔에 가득 채워 집사람 몰래 주방 식탁에 쭈구려앉아 한모금 또 한모금, 천천히 마셨다.

그리곤 방에 들어가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뱃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좔좔 설사를 했다. 부글부글거리던 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비몽사몽간에 집사람의 푸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아이구 냄새야. 냄새가 왜 이리 지독하노! 당신 술은 왜 먹어요? 당신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거실에서 꽈당하고 넘어졌다고요. 옆집 아저씨 술먹고 길바닥에 넘어져 쓰러지는 바람에 지금 병원에 계시잖아요."

그랬다. 옆집 양반은 나보다 열 살 연장인 인생 선배다. 술먹고 집앞에 넘어져 있는 그 양반을 이웃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연락하여서 데려갔다고 했다.

의사의 금주령이 내려진지 이미 오래이다. 1999년말에 내려졌으니 벌써 30년이 다돼간다. 술을 거의 끊다시피했지만 간혹 회식자리에 앉으면 소주 두어 잔은 했다.

그런 나를 집사람과 시집간 딸아이는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젠 술을 딱 끊어야겠다. 즐기려고 마시는 술인데 한 잔술에 이렇게 빌빌되니 이젠 술을 딱 끊어야겠다. 아무리 큰 술잔이라해도 한 잔술에 나가떨어지다니 ,기억도 못한다니, 한 잔술이 아무리 유혹을 해싸도 이젠 술을 끊어야겠다.

낮엔 창문밖 하늘올려다보며 뜬구름 벗을 삼고 밤엔 형형색색의 별님헤어가며 외로움 달래며 술을 멀리해야겠다.

그러나 당신은 아십니까?

잘난 아버지가 아닌 어눌한 아버지의 고충을 당신은 아십니까?

어눌한 아버지의 외로움을 그대는 헤아려보셨습니까? 한 잔의 술로 고독을 달래는 아버지의 설움을 그대는 단 한 번만이라도 가슴에 담아보셨습니까?

그렇더이다. 44여 년을 자식낳아 키우다보니 터득이 되더이다. 가족을 먹여살리고 바람막이가 되어야하는 아버지의 고충이 가슴에 와 닿더이다.

예전엔 몰랐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외로움이 뼈에 와 닿더이다. 세월이 자연스레 가르쳐주더이다.

입속으로 흥얼거려본다. 박진관의 '그 겨울의 찻집' 을.

 

바람속으로 걸어갔어요

그 찻집 이른 아침의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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