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출렁다리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8. 5. 22:16

나라도, 우리네 개개인도, 가난하기만 했던 50, 60년대!

왕능장터 끄트머리에 있었던 솔밭에서 강 건너 동네인, 갈밭사이에는 출렁다리가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다리를 건널때면 다리는 심하게 흔들렸다. 철부지 아이들 두어 셋이 뛰어가기라도하면 다리는 강풍에 물결치듯 제멋대로 출렁거렸다.

악동들은 다리 양끄트머리에 네댓이 늘어서 있다가 다리 한복판에 사람이 들어서면 건너가지 못하게 마구 굴러댔다.

 

모교였던 문양초등학교 앞을 흐르는 영강에도 출렁다리가 놓여있었다. 갈밭다리만큼은 아니었지만 학교앞 강에 놓인 다리도 출렁다리였다.

초등학교4학년때였다. 여름방학을 하던 날이었다.

방학을 하는 날이라 오전수업만 받은 아이들은 신바람나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도 동무들과 어울려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만큼 앞서 다리를 건너가던 정연옥이와 김갑연이 두 기지바가 나를 돌아다보더니 놀려대기 사작했다.

 

"김동하이 삘구다리, 마른 명태 삘구다리! 김동하이 삘구다리 마른 명태 빨구다리!"

 

두 기지바는 손나발을 만들어 입에다대고 뒷걸음질을 쳐가며, 박자까지 맞춰가며, 나를 놀려대고 있었다.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분통이 터졌다.

 

'저 노무 기지바들이 감히 급장인 나를 놀려! 이노무 기지바들 잡히기만 해봐라.'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책보를 명식이에게 맡기고 두 기지바를 쫒아가기시작했다. 달리기 동네대표선수였던 나는 달리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두 기지바는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꽁지빠지게 달아났다. 한 성질하는 나에게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반쯤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달아났을 것이다.

키가 크서 아침조회때면 늘 줄 뒤에 서는 두 기지바는 성큼성큼 잘도 달아났다. 그러나 두 가지바는 우리 동네에 사는 달리기 학교대표선수인 오삼구가 아니었다. 나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기시작했다.

 

'조 노무 기집아들을 붙잡아 신작로바닥에 끌박고, 다신 안 그런다며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싹싹 빌때까지 엉덩이 걷어차야 할낀데.'

 

나에게 쫒기던 두 기지바는 울도담도 없는 갑연이네집 마당으로 쏙 들어섰다. 뒤따라 간 내 손아귀에 갑연이 단발머리가 잡힐락말락했다. 이제,머리채를 휘어잡고 끌박아 엉덩이를 거둬차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이었다. 두 기지바는 내 염원대로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다.

마당으로 뛰어던 두 기지바는 마루도 없는 뜰로 올라서더니 안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곤 문고리를 붙들고 죽으라고 늘어졌다. 나는 그만 닭쫒던 개, 지붕바라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덜컥덜컥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깩깩!"소리를 질렀다.

 

"이니리 기지바들, 문 안 여나! 문 안 열면 니들 패직이뿌린다. 그카이 빨리 문열어라."

 

이를 앙다물고 그렇게 용을 쓰가며 시간만 소비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동한아! 또 저니리 기지바들이 널 놀리고 도망쳤나?"

 

뒤를 돌아보니 갑연이 어매가 다라끼를 메고 등뒤에 서계셨다.갑연이 어매는 내게는 먼 일가 할머니가 된다고 언젠가 어매가 일러주셨다. 그러니 갑연이는 내게 아지매가 되는 셈이었다. 꼴갑에 아지매는 무슨 아지매!

 

"배고프다. 새터까지 갈라카만 한참은 더 가야할낀데 그만 가거라. 늦게 가만 니 어매 걱정한다. 니 대신 내가 저 노무 기지바들을 붙잡아 혼꾸멍을 내줄팅께 빨리 집에 가거라."

 

아득하게 높다란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쌔에!" 하고 말매미가 울었다. 나무꼭대기를 올려다보고 "휙" 돌맹이를 던졌다. 애궂은 매미에게 그렇게 분풀이를 해댔다. "포롱!" 매미가 날아갔다. 매미는 이렇게 욕지거리를 하며 날아갔을 것이다.

 

"고노무 자식, 어린놈이 성깔 한번 고약하네!"

 

매미가 날아가버린 미루나무꼭대기엔 하얀 뭉게구름이 오도가도 못한채 꼼짝없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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