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너는 네발로 기고 나는 두발로 걷는다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8. 4. 20:43

강 시인이 다녀갔다. 낮 두시 조금 지나서 왔다가 한 시간쯤 머물다 돌아갔다.

강 시인을 보내고 쓰레기장에 나가봤다. 점심먹고 쓰레기를 정리하였는데 두어 시간만에 쓰레기는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노무 쓰레기는 계절도 안 타나. 더운줄도 모르나.'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그 많은 쓰레기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더니 땀에 젖어버린 옷이 몸에 척척 감겨온다.

덥다. 참 어지간히 덥다. 오늘이 젤로 더운 것 같다. 화장실에 가서 훌훌 씻는다. 좀 낫다. 그렇게 물로 더위를 식히고 초소로 돌아왔다.

우연히 아무 생각없이 아파트 뒷배란다 밑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누르스럼하게 생겨먹은 커다란 알록고양이가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눈에 익은 고양이었다. 녀석은 벽에다 영역 표시를 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부아가 치밀었다.고함을 질렀다.

 

"야아, 이 자슥아! 어디다대고 다리를 치켜들고 지랄이야. 망할노무 자식같으니라고"

 

그런데 그 자식도 만만찮았다. 네 다리를 곧추세우더니 경계태세를 취했다. 딴에는 비쩍마른 노인네라 아롬하게 보았던 모양이었다. 고양이 주제에 사람인 나를 말이다.

 

"뭐야. 네깐놈이 한번 해보자는 것이여 뭐여. 야, 이자슥아, 잘들어. 태초에 창조주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때 너같은 고양이는 네발로 기어서 다니게 만들었고 나같은 사람은 두발로 서서 걸어다니게 만들었단 말이여. 네발로 기어다니는 길짐승인 너하고 직립보행하는 사람인 나하고는 격이 달라도 한참은 다르단게여. 오늘은 한 하늘 이고 함께 사는 이웃이라고 이쯤해서 봐주는 것이여. 한번 더 그딴짓거리하면 국물도 없을것인게 앞으론 조심하더라고."

 

알아들었는지 그제서야 그 자식은 엉덩이를 들썩하더니 팬스를 넘어 외곽도로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빗자루 찜질은 당하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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