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는 내가 일하는 아파트에 사는 열한 살, 초등학교4학년 여자어린이다.
은서는 예쁘장하다. 착하고 귀엽다. 똑똑하다. 그기에다 부지런하기까지하다.
며칠전에 동생, 건우를 데리고 은서가 쓰레기장에 나타났다. 쓰레기 버리려 나온 것이다.
건우는 여섯 살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누나와는 달리 천방지축이다.
건우 손에는 조그만 야쿠르트 빈통 한개가 들려있었다.녀석이 엉거주춤하게 서있자 은서가 말했다.
"똑같은 거 있는데 버리면 되잖아!"
프라스틱이 담겨있는 바구니를 가리키며 은서는 동생 건우에게 그렇게 일러주었다.
그러자 건우가 "휙!" 하고 야쿠르트 빈통을 프라스틱이 잔뜩 담겨있는 바구니에다 던져넣었다.
언젠가 초소 앞에서 기다랗게 줄을 지어 어딘가로 가고있는 은서네 가족을 만났다. 맨 앞에는 건우가 두 팔을 한껏 휘저어며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었고 그 다음이 은서, 뒤에는 은서보다 딱 한 살 더 먹은 언니, 가은이가 따르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조금쯤 뒤처져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은서 손에는 뭣인가가 들려있었다.
은서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은서가 일꾼이구만요"
은서 엄마가 생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은서 없이는 우리집이 돌아가지 않아요!"
쓰레기장은 그날도 여뉘날처럼 무질서가 판을 치고 있었다.
이곳저곳엔 검정색 비닐봉지가 나뒹굴고 음식물쓰레기를 일반쓰레기와 함께넣은 쓰레기봉투에서는 침전물이 새어나와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도매값으로 넘어가는 모범시민에게는 아주 죄송한 얘기지만 쓰레기장을 난장으로 만드는 덜떨어진 어른들에게 이런 권고를 하고싶다. 은서를 선생님으로 모셔놓고, '민주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기초질서' 강의를 한번 들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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