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구비 고갯길이 달빛에 젖어 던다. 자갈길 신작로를 빈 달구지가 돌아간다.
"그래, 급할 것도 없으니 좀 쉬었다 가자구나! 막걸리 한 사발 마셔가며 쉬었다 가자구나."
워낭이 가던 길을 멈춘다. 아랫마을 주막집에서 받아온 막걸리 두어 되 중 되 가웃은 상일꾼 워낭에게 먹이고 나머지 반 되는 수레꾼이 마신다.
한참을 쉬었나보다. 초록 보리밭골에 아지랑이 피어나듯 술기운이 온 몸에 아른거린다.
"그만 가자. 너무 쉬면 일어나기 싫다."
별빛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막걸리 두 어 사발에 창 한가락이 쏟아진다.
"한 많은 이이 세사앙 야소칸 니이임아아-"
팔 휘저어가며 수레꾼이 첫소리를 매기자 듣고 있던 워낭이 퉁방울 같은 눈을 끔벅이며 다음 소절을 받는다.
"정을 두고 모오만 가아니이이 눈무울이 나안다."
걸쭉한 목소리에 달빛이 휘감긴다.
이번에 내차례, 기다리고 있던 앞산 부엉이가 꺽꺽대는 목소리로 마지막 구(句)를 채운다.
"아무려엄 그러치이 그러코오 마알고오오 한 오배액녀언 살자느은데 웨엔 서엉화아요오"
땡그랑 워낭소리 뾰족바위 돌아간다.
줄가리를 친 볏단이 어느 정도 마르면 농부들은 볏단을 나르기 시작한다. 집 앞마당에 노적가리를 만들어 바짝 말린 뒤 타작을 하기 위해서다. 늦가을, 이맘때쯤이면 볏단을 싣고 오가는 소바리와 달구지로 신작로가 벅적거렸다.
먼동이 트면 나다니기 시작하는 소바리와 달구지 행렬은 노루꽁지 만큼 짧은 늦가을 해가 넘어가고 저녁별이 떠오르고 난 뒤에야 모습을 감춘다. 앞산 꼭대기에서 부엉이가 청승맞게 울어댄다.
목고개를 넘어 강을 끼고 너분열 동네를 휘돌아 가면 강 건너 저 만치에 문양국민학교가 보인다. 명규네 집은 신작로 옆 다리 입구에 있었다. 손바닥만한 땅뙈기로는 가족이 연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명규 아버지는 소달구지를 한 채 장만해서 장날이면 장짐을 싣고, 가을엔 볏단을 날라주거나 곡식가마니를 운반해주고 받은 삯으로 그럭저럭 가계를 꾸려나갔다.
늦은 밤, 명규아버지가 소달구지를 끌고 목고개를 넘어간다. 아마도 일이 늦게 끝난 모양이다. 삐걱거리며 고개를 넘어가는 달구지! 사람도 소도 한 잔 술에 취했나 보다. 고삐를 쥐고 달구지에 올라앉은 명규아버지가 팔을 휘저어가며 노랫가락 한 가락을 뽑아댄다.
"한 많은 이이 세사아앙 야소카안 니임아아"
별빛이 몸서리 치게 아름답다.
(201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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