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소나기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7. 10. 12:02

어젯밤 여덟시쯤엔 소나기가 내렸다. 하늘에서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는 것처럼 세차게 내렸다.

소나기가 내릴때는 징조가 있다. 후덥지근해지고, 구름이 시커멓게 모여들고, "우르르 쾅" 천둥이 울고, "번쩍!" 번개가 친다. 소나기는 오형제라고 한다. 내리고 그치기를 다섯번쯤 반복한다는 뜻이다.

소낙비는 10여 분 조금 넘게 내리다가 그쳤다. 만약 그렇게 세차게 한 두어 시간 넘게 내렸다면 영주천지는 물바다로 변했을 것이다.

 

어릴 적 동환이 형네집은 마을 초입에 있었고 우리 집은 마을 끝머리 윗담에 있었다. 우리 집에서 아랫담 동환이 형네 집에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했다. 당시 우리 동네는 50여 호쯤 되었다.

엉덩이에 뿔난 죽어라고 말 안듣는 밉상스런 송아지같았던 개구쟁이 시절 난, 동환이 형네 집에 살다시피했다. 가까운 집안 형인 동환형은 나보다 두 살위였다.

오늘처럼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밤이었다.

후덥지근하더니 구름이 시커멓게 모여들고 뇌성벽력이 치더니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와 동환이 형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마당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우리 두 꼬맹이는 좋아라 깨춤을 추며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후덥지근했던지라 소나기를 맞으니 무척 시원했다. 울섶엔 가슴이 넓은 노란 호박꽃이 내리는 소낙비에 몸을 맡긴채 덤덤히 앉아있었다.

 

왜관에 있는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수도신부로 봉직하시던 동환형, 아니 라우엔시오 동환 신부님은 쉰을 조금 넘긴 나이때 지병인 간질환으로 하느님곁으로 가셨다.

장마철 날씨라 또 슬금슬금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제처럼 소나가가 한 줄기 내리려는 모양이다. 장마철엔 외상 구름은 없는 법이다.

그 옛날 소낙비 맞아가며 "깔깔"대며 웃던 동환형이, 형네 집 울타리에 피어난 노란 호박꽃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 원짜리 지폐 한장의 가치  (0) 2017.07.22
가정의 달  (0) 2017.07.18
허리병  (0) 2017.06.28
밥하기 싫네  (0) 2017.06.23
여름이 짙어간다  (0) 201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