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윤동주 시인과 어느 여대생/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9. 29. 11:17

쓰레기집하장에 버려지는 그 많은 쓰레기 중에는 책들도 꽤 많다.

제작년쯤일 게다. 어느 집에서 책을 무더기로 버렸다.

읽을 만한 책이 있는가 살펴보았다. '윤동주 시선'이 눈에 띄었다.

90년도 초에 출판된 낡은 책이었다. 책장을 넘겼다.

첫장 하단 여백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님!"

책을 갖다버린 할머니께 물어보았다. 따님이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할머니는 대답을 하셨다. 충북대 국문학과를 나왔다고.

중어중문학과를 나온 우리 집 애물단지보다 학번이 2년쯤은 빠른 듯했다.

그 여대생은 '서시' 같은 깨긋한 시를 읽어면서,

일제의 폭압에 맞선 저항시를 읽어면서,

윤동주 시인을 존경하고 사랑했으리라. 시인의 꿈을 키워왔으리라.

이따금 집에 다녀가시는 수녀님을 아파트 마당에서 만난다.

그 여대생은 학교를 졸업하고 수녀가 되었다. 

"수녀님! 안녕하세요. 요즘도 시를 쓰시나요?"

"웬걸요. 시 안쓰요. 감사합니다!"

수녀님은 그렇게 대답을 하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하느님을 닮아서일까' 생긋 미소짓는 수녀님 얼굴이 참으로 곱다. 그래서일까. 얼굴에 잔주름도 곱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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