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주유천하(周遊天下)/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4. 30. 11:31

군에서 제대를 하던 해인 1971년 봄이었다. 제대하고 며칠이 지난 3월 중순 어느날이었다.

휴가를 나온 동네 후배, 오병호와 나이 스무 살이 되락마락한 햇병아리 아가씨 셋을 데리고 목고개를 넘어서 무작정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너불연 동네를 지나고 물미를 거쳐서 가실목 고개를 넘어섰다.

워낙 오래전에 일이라 기억이 아삼아삼 하긴 해도 함께 갔던 아가씨는 영숙이아지메와 종희, 승자였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농암장터를 지나고 농바우다리를 건너선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하느물숲을 지나고 청하초등학교 앞 고개를 넘어선 우리 일행은 쌍룡계곡 초입에 있는 내서마을에 다달았다.

마을 입구에는 마중이라도 나온 듯 그 동네 아가씨들인 듯한 처녀 몇이 길가에 서있었다.

마치 전세라도 낸 듯이 시끌벅적하게 길을 누벼가며 걸어가는 우리 일행을 그 아가싸들은 고까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급기야 성깔 꽤나 있어뵈는 아가씨 하나가 참지 못하고 내뱉았다.

"개코도 다 그러코 그러네. 한 개도 잘난 것도 없네."

벌써 45년이 지나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영숙이아지메도, 종희도, 막내둥이 승자도 이젠 나이 예순 하고도 중반을 넘어섰겠다. 그래, 어디에선가 잘 살아들 가고 있으리라. 그 오만 무례한 그 아가씨도 지금쯤은 손주 얼려가며 알콩달콩 그렇게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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