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은 갑순이었다.
첫사랑은 거의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그 무슨 학문적인 학설로 비약하자는 것이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얘기이다.
나와 갑순이는 동성동본이었다. 내가 아제비뻘이었다. 숙항이었다. 나이는 갑순이가 한 살 많았다.
예전에는 초등학교를 아홉 살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의 사랑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파토가 나버렸다. 조그만 다라키 매고 둘이서 소풀 뜯으러 다닐 때가 일곱, 여덟 살 적이었다. 우리는 신랑각시처럼 그렇게 사이가 좋았다.
"갑순아! 소미기 하로 가자아."
"부뜰아, 반두께비하고 놀자!"
우린 소풀 뜯어러도 같이 다니고 신랑신부도 되면서 소꿉놀이도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내가 갑순이 보고 아랫 마을 옥희 만큼 이쁘지 않다고 했다. 자고로 여자란 소꿉장난 하는 꼬마 아가씨도, 스무 살 말만한 아가씨도, 칠순이 넘은 안어른도, 예쁘다고 해야 좋아하는 법이다. 얼빵한 내가 그 법칙을 어겨 버렸으니 갑순이가 토라질 만도 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내사랑 갑순이는 고 조그만 고무신을 거꾸러 신고 말았다.
"아뿔사!"
후회해 본들 소용이 없었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앞 집 영식이가 갑순이를 꿰차고 가버렸다.
그렇게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먼 일가 질녀가 되는 갑순이는 단양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내나이 일흔이니 갑순이는 일흔에 귀 하나 달았겠다.
'세월 참 마이 흘렀고만' 그렇게 중얼대며 빙그레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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