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28호 대장전大莊殿이다. 조선후기에 중수된 사찰건물 불전이다. 윤장대輪藏臺를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조각 하나 하나에 옛 장인匠人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들었다.
저 용은 승천하지 않고 불전을 지키려나보다.
보물 제684호 윤장대輪藏臺의 화려한 모습이다. 조선후기에 불경을 보관하기 위하여 만든 공예품이다. 높이 4.2m, 둘레 3.15m다.
통일신라 시대 두운대사가 지은 예천 용문사 전경全景
경북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15여km 떨어진 소백산자락에 있는 절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길 285-30(내지리)이 길주소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10년(870) 이 고장 출신의 두운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유명하다. 용문사 명칭에는 두가지 유래가 있다고 하는데 "고려태조가 삼한통일을 위하여 두운대사를 방문코자 동구에 이르니 청룡 두마리가 나타나 인도하였다" 하여 절의 이름도 용문사로 불렀다. 고려 명종 원년(1171)에 태자의 태를 절의 왼쪽 봉우리에 묻고 청기사로 고쳤다가 다시 소백산 용문사龍門寺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고려시대엔 수백 명의 승려가 상주하였고 여러 차례 외침을 당할 때마다 '일만승제 삼만승제 一萬勝祭 三萬勝祭'를 올려 국난 극복을 위해 기도했으며, 규정원으로 승병을 훈련하던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엔 승병을 짚신을 짜서 보급하던 곳으로 호국불교의 장이기도 하다. 척불숭유의 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에도 왕실로부터 대접을 받아 왕이 잡역을 면해주라는 명을 내렸는데 그 교지가 보물 제729호로 지정되어 전해오고 있다. 1478년(정조7)에는 문효태자의 태를 안장했을 정도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84년에는 보광명전, 해운루, 응향각, 강원, 요사 등 건물이 타버려 전각을 새로 세우면서 대대적인 개축을 하는 바람에 주변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마당을 넓게 닦아 아늑함과 포근함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글은 백과 어학사전에서 사진은 kbs다큐에서 모셔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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