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도솔봉 너머로 넘어가는 해/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11. 6. 21:45

 

 

 

 

 

 

 

 

 

 

 

 

 

 

 

 

 

 

 

 

제 오후, 두시 조금 지나서 부석사행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량수전에서 저만큼 비켜서서 도솔봉 너머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엊그제에도 부석사를 찾아갔지만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가 심술을 부려 발길을 돌려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영주시내에서 부석사를 가려면 풍기나 순흥을 우회해서 가는 길과 영광고등학교앞을 지나 진우와 상석을 거쳐 곧추 가는 길이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진우와 상석을 거쳐가는 두번째 길을 택한다.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승용차가 대중화되기 이전인 칠 팔십년대까지만해도 그 길은 시내버스의 황금노선이었다.

 

요즘은 시외곽지를 운행하는 시내버스 승객의 대부분은 육, 칠, 팔십대 노인들이다. 게중엔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도 이따금 눈에 띈다.

"잘 가시대이."

"예,우예던동 건강하새이!"

내리는 할머니와 남아있는 할머니가 나누는 인사다.

노인네들의 만남과 이별엔 배려와 정이 넘쳐난다.

차창밖엔 늦가을풍경이 고즈넉하다.

 

부석사정류장에 도착하니 세시가 거의 다 되어간다.

언제 보아도 현란한 '부석사 진입로 은행나무숲길'이다. 이땅, 다섯번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름다운 은행나무숲길이다.

매표소를 지나서 휘적휘적 올라간다. 나이가 나인만큼 계단을 오르자니 숨이 가쁘다. 가다쉬다를 반복해서 무량수전앞에 다달았다.

무량수전(無量壽殿),

고려시대에 지어진 목조건물이다.

기둥이 배흘림형식이다.

가장 아름다운 전통목조건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옛 장인(匠人)들의 혼이 배어던 건물이다. 대한민국국보 제18호다.

안동 봉정사(鳳停寺) 극락전(極樂殿)이 최고(最古)의 목조건물로 밝혀지기 이전까지는 이 나라 최고의 목조건물로 자리매김하던 건물이다.

무량수전은 조금쯤 떨어져 멀리서 바라보아야 제격이다.

 

선묘각(善妙閣)과 조사당(祖師堂),조사당 한켠엔 의상대사가 짚고다니던 지팡이에서 움이터 골담초로 자라났다는 선비화가 천년세월을 비한방울 맞지 않은채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경내(境內)의 이곳저곳을 두루 살펴보는동안 해는 도솔봉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늦가을, 도솔봉 너머로 넘어가는 저녁해와 해넘어 간뒤 피어나는 진분홍빛 저녁놀을 만나보려고 부석사를 찾곤했다.

지난 몇년을 허탕쳤는데 어제는 딱 맞아떨어졌다.


무량수전에서 엇비스덤히 비켜서서 도솔봉 너머로 넘어가는 저녁해를 바라본다. 붉게 붉게 타오르다 급기야 한점의 빨간 점이되어 도솔봉 너머로 사라지는 저녁해!

그대는 한창 타오르는 장작불의 속살을 본적이 있는가? 여인의 감춰진 속살처럼 고혹적인 장작불의 속살을 본적이 있는가!

도솔봉 너머로 넘어가는 저녁해는 여인의 감춰진 속살같이 고혹적이었다.

엊그제 해떨어질무렵,

우연하게 나와 이웃되어 대자연이 빚어내는 그 황홀한 연출을 함께 보았던 두 분 선생님이 계셨다.

강원도 태백시 황지읍에 있는, 상장중학교에 근무하신다는 황우루, 심영임 두 분 선생님이셨다.

그날, 늙은 노인네의 왼쪽 오른쪽에 붙어서서 싫은 기색(氣色) 조금도 없이 대자연의 아름다운 연출을 함께 감상한 젊은 두 분 선생님의 넉넉한 마음에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