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일곱시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섰다.
집사람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스리슬슬 자전거페달을 밟아댔다.
작년말 다니던 직장을 퇴직한 뒤,
금년초부터 우리 내외는 외식을 자주하기 시작했다.
해서, 기차역 부근의 웬만한 음식점은 우리내외는 훤히 꿰뚫고 있다.
물론 주머니사정이 열악한 우리내외가 들락거리는 음식점은 부담없이 한끼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소시민이 주요 고객인 서민음식점이다.
오늘밤엔 남부육거리쪽으로 자전거핸들을 돌렸다.
큰길에 들어서자 자전거를 타고가기가 위험했다. 안전불감증은 나와 이웃을 동시에 불행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나도 집사람도 자전거에서 내렸다.
대학로에서 조금쯤 기차역방면으로 내려가자 길 오른편에 '멸치국수'란 간판이 보였다.
그옛날 어릴 적,
우리 어매가 끓여주시던 잔치국수가 생각났다.
어매는 멸치끓여 우려낸 물에 가느다란 잔치국수를 말아주시곤 했다.
그 맛은 둘이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맘큼 맛이 기가 막혔다.
집사람 팔을 끌어당겼다.
저 멸치국수집에 들어가면 그 옛날 우리 어매가 끓여주시던, 기막힌 국수맛을 볼 것 같아서였다.
가게에 들어서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국수 두 그릇이 나왔다.
그 옛날 울어매가 끓여주시던 국수맛을 거의 닮았다.
나는 말끔히, 집사람은 국물을 조금 남기고 그릇을 비웠다.
가게내부를 포스팅하려다 관뒀다.
나이 일흔이 넘은 노인네가 주책일 것 같아서였다.
가게를 나서는 우리내외에게 권효섭 사장님은 허리숙여 인사했다.
나이든 노인네에게 허리숙여 인사하는 걸 보아 젊은 사장님이 예의도 제대로 아는 모양이었다.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가게를 나와서 저만큼 올라오다 발길을 돌려 저쯤에 보이는 간판을 포스팅했다.
집사람이 궁시렁거렸다
"당신도 참 주책이우."
오늘 저녁은 명인이 만드는 멸치국수로 해결했으니 뱃속이 호강하겠다.
영주교회종탑꼭대기에 우뚝 서있는 빨간 십자가가 오늘밤엔 유난스레 밝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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