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홉시가 넘었다.
조금 전에 집사람에게 멀건 죽한사발 얻어먹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천정을 올려다본다.
이 시간이야말로 하루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다.
살아가자면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이런저런 고뇌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고마웠던 이웃에게 마음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예쁜 두 손녀딸 떠올리며 빙그레 웃어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집사람에게 아침이랍시고 얻어먹은 멀건 죽은,
정확히 말하자면 죽이 아니라 스프다. 엊그제밤에 집사람과 함께 홈마트에 장보러가서 사온 스프다.
입까꺼로울 때 먹는 아침으론 밥보다 훨씬 낫다.
여기서 잠깐,
죽(粥)얘기가 나왔으니 조선조 말 이 땅의 천재시인이었던 풍류객 김삿갓(金炳淵)의 시, '無題'를 모셔보자.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排廻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네다리 소나무반에 죽 한그릇이어라
멀건 죽사발에 하늘빛과 구름그림자가 함께 노니는구나
그러나 주인이시여, 무안해할 건 없소이다
나는 물에 드리워져 떠내려오는 청산을 좋아한다오.
창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엔 제비 두마리가 오락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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