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옛 친구/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5. 28. 23:13

 

 

43년 전, 직장따라 영주에 왔을 때 만난 친구가 있었다.

구역전 거리에서 세탁소를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 세탁소엔 늘 친구들로 북적거렸다.

고스톱도 치고 국밥집에 가서 막걸리도 마시며 친구들 틈새에 끼어 장년의 한때를 보냈던 나였다.

 

작년말에 그 친구는 세탁소를 그만 두었고, 2004년 12월말 공무원을 정년퇴직한 뒤 아파트경비원으로 재취업한 나도 작년말 퇴직을 하고 백수건달이 되어버렸다.

 

옛친구가 그리워 막걸리 한병과 마른 안주를 얼마쯤 준비해서 친구집을 찾았다. 엊저녁에 들리겠다고 전화를 했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친구가 사는 동네도 많이 변했다.

건물이 다시 들어서고 새길이 나고, 친구집 찾는 게 헷갈려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고 친구가 구 임무소가 있었던 곳으로 나왔다.

거의 10여 년만에 만난 우린 반갑게 손을 잡았다.

친구집에 들렸을 때가 6시 조금넘어서였다.

집에 계시던 친구 부인은 술상을 차려주고 모임이 있다며 외출을 하셨고,

우린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잔을 기우리며 지난날의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친구집에 30여 분 머물다가 일어섰다.

골목길을 돌아나와 큰길에 들어섰다.

자전거페달을 부지런히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식당앞을 지나는데, '烏飛梨落' 이랄까 아님 '見物生心' 이랄까 시장끼가 느껴졌다.

해서 식당에 들려 비빔밥 한그릇을 시켜먹고 왔다.

365전통시장앞을 지나는데 핫도그 포차가 눈에 띄었다.

나 한개 집사람 한개 먹으려고 두개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나 친구집에서 저녁먹고 왔수."

"뭐 먹었수?"

"밥!"

"밥인 줄 누가 몰라 묻나요!"


집밥인지 아님 식당에서 시켜먹은는지 집사람은 그게 궁금해 시시콜콜 물어대는 모양새였다.


"친구부인이 청국장 끓여줘서 밥에 말아 시금치 나물에 구운 김하고 저녁 한번 잘 먹고 왔네요."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한 나였다. 그렇게 거짓말을 둘러부치는 중 난, 스리슬슬 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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