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매실을 따면서/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6. 5. 13:37

집사람에게 말했다.

아침먹고 매실을 따자고.

우리 집 매실나무는 1996년 집수리하고 심었으니 심은지 23년 됐다.

 

사다리와 나무로 만든 우마를 담장에 걸쳐놓고 나무에 올라 매실을 따기시작했다.

매실나무엔 굵직굵직한 가시가 박혀있기에 나무에 오르기도 만만찮다. 나무에 오른다해도 운신의 폭이좁아 매실을 따기가 무척 힘이든다.

난, 나무재주가 젬병이다.

원숭이처럼 능수능란하게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 참 신통방통한 재주를 가졌구만!' 하고 간탄어린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다. 젊은 시절에도 그랬었는데 나이 일흔이 넘은 요즘이야 오죽하겠는가.

 

가시에 찔리고, 긁히고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매실 한 됫박을 땄다.

작년에 강전지를 하였기에 수확량은 예상한대로 적었다.

나무도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작년 초여름 매실을 수확하고 난 뒤, 강전지를 할때, 하나 하나 떨어져나가는 곁가지를 보며 나무의 원줄기와 뿌리는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심은지 23년,

우리 집 매실나무도 나이를 먹었다.

십 사오년 전,

우리 집 매실나무는 가근방에서는 제일이었다.

매화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이른봄이면 길가는 행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폰의 셧트를 눌러대곤했다.

그러했던 해에는 수확량도 15kg이나 되었다.

나무의 수형을 가다듬어 그 옛날의 영광을 되살려보겠다며 감회에 젖어있는데 집사람이 나왔다.

사다리좀 잡아달랬더니 잡는 척 하더니만 이웃 집 안어른과 수다를 떨던 집사람이었다.

집사람이 나온 까닭은 뻔했다.

나무전지를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며 잔소리를 널어놓을 때 알아보았다. 아이들 숙제검사하는 초등학교선생님처럼 내가 한일 검사하러 나온 집사람이었다.

'에라, 천하의 잔소리꾼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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