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
학유정 코 꼴만 한 홀에는 고스톱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코꼴만한'은 '아주 작은'의 경상도 문경 지방 사투리다.
엊그제와 어제 잃은 본전 찾으러 왔다가 자리가 없어 대기 중이다.
어디 목 좋은 곳에 자리가 나면 들어가 보겠다며 맘을 추스르며 대기하고 있다.
고물상에나 있을법한 골동품 텔레비전엔 대한민국 제일의 가수 이미자가 '섬마을 선생님'을 부르고 있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사람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 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질 마오
막간을 이용해서 친구 경호가 얘기했다.
예전에 우리 집이 관사골 있을 때, 옆방에 영광여고에 다니는 여학생 둘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경호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네. 토요일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
밖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
내방과 학생들이 자취하는 방은 얇은 합판으로 칸막이가 되어있었고,
그날은 비번이라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네.
그때, 한 학생이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부르더라고.
참 잘 부르데. 이마자 뺨치게 잘 부르데.
내가 손뼉을 치며, "앙코르!"하고 외쳤더니 고맙게도 앙코르를 받아주더라고.
까마득이 멀어져 간 50여 년 전의 옛 얘길세.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 속의 그 여학생,
어디에서 어찌 살아가는지, 문득문득 생각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