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측간厠間/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5. 29. 14:54

아침, 출근해서 순찰 한 바퀴돌고 쓰레기장 정리하고나니 일곱시가 거의 다 되었다. 5시 50여분에 초소에 도착했으니 쓰레기정리하는데 꼬박 50여분이 걸린 셈이다.

쓰레기장 냄새는 아주 역겹다. 특히 우유썩는 냄새는 견디기 힘들다.

경비원 생활을 오래하다보면 쓰레기장에서 풍겨나오는 역한 냄새에도 이골이 난다.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다.

올해로서 꼭 13년을 그 역한 냄새를 맡으며 근무해왔다.그 역겨운 냄새를 명품화장품의 냄새로 적응하며 살아온 세월이 13년이 된 셈이다.

초소에 들어와서 가방정리한 뒤 수건을 들고 화장실에 가려고 초소를 나섰다. 몇 발자욱 코앞에 2초소 장 선배가 너풀너풀 걸어간다.

'아뿔사 한발 늦었구나!'

그양반도 나처럼 아침에 화장실에 가고, 들어앉았다하면 쉬이 나오는 체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장 선배가 나올 때까지 경로회간 앞에 있는 조그만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야했다.

 

고등학교2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만학을 한 나는 고2 때 스물이었다.창식이네 집은 뒷산 아래있었다.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창식이네 집에 큰일이 있었다. 창식이 고모 홍조누나가 시집가던 날이었다. 이거저것 배터지게 얻어먹고 화장실 아니 측간에 들렸다. 집 뒤 고욤나무 아래에 소나무가지로 얼기설기 벽이라고 엮어놓고 가마니로 문해달고 지붕도 없는 노천측간이었다.

그곳에 틀어밖혀 마냥 쭈구려앉아 끙끙대며 용을 쓰고있었다. 시간이 얼만큼 흘렀다.

바깥에 누군가 서있는듯 했다. 여자인듯 했다. 기다리다 못견디겠는지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 급해요. 좀 나와주시면 안될까요?"

 

50여 년이 흘러간 까마득한 옛이야기다.

장 선배 나오기를 기다리며 그때 일을 떠올리며 빙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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