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자존심(自尊心)/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3. 5. 13:12

 

며칠전에 관리소장과 대판 싸웠다.

싸웠다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소장을 몰아붙였다.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가며 입에담지 못할 욕질을 해대며 소장을 몰아붙였다.

나이 일흔 둘이 될때까지 세상을 살아오는동안 누구를 향해 그렇게 욕질하고 상소리한 적은 없었다.

자존심이 무너져서였다. 되먹지도 않은 지시를 내리는 소장의 처사에 억장이 무너져 내러서였다.

며칠전, 소장이 작업을 지시했다.

그날, 소장은 지하비트에 쌓아둔 세대용 소화기 숫자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지시가 있기 30여 분 전에 경비원, 기사, 소장, 그렇게 전 직원이 매달려 101동, 102동 지하비트 계단에 수량을 확인하고 소화기를 쌓았다. 그런데도 소장은 재차 수량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기사에게 갔다. 소장이 재차 수량을 확인하라고 하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상의했다. 우리는 지하비트로 내려갔다.

지하비트 계단엔 갈지잘로, 지그재그로, 소화기가 적재되어 있었다. 숫자를 확인하려면 아무렇게나 형편에 맞춰 쌓아둔 3.4k나 되는 소화기 110개를 하나하나 분리하여 헤아려야했다. 머리 나쁜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렇다는 얘기다.

"김 기사, 헤아릴 수 있겠나? 소장 그 망할 놈, 완전 사이코다. 숫자 확인하고 입고시킨 소화기를 왜 재차 확인하라 하노."

"맞니더. 소장 사이코니더."

김기사가 대답했다.

사실 확인하고 말고 할것도 없었다. 소화기는 전체가 372개였다. 3초소가 124개였고 2초소가 138개였고 우리 1초소가 110개였다. 110개 확인하여 입고를 시켰는데 뭣을 더이상 확인한단 말인가.

만약 모자라면 자기에게 책임지라 할까봐 그렇게 한다고했다.

소화기 한 개 값이 만 오천 원이라고 한다. 모자랄 수도 없겠지만 설령 모자라도 몇개가 모자라겠는가! 남의 윗자리에 앉은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그리 없단 말인가?

소장에게 못한다고 딱 짤라 말했다.

"못해요?"

소장의 신경질적 목소리가 인터폰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예, 못해요."

소장은 얼굴이 파랗게 변했을 것이다. 성이 나면 소장은 얼굴빛이 칠면조처럼 그렇게 변하곤 한다.

"점심먹고 두시에 내가 할테니 문열어 줘요."

"알았어요."

두시가 되자 어김없이 인터폰이 울렸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받지 않았더니 폰이 울렸다. 발신번호를 확인하니 사무실 번호였다. 받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흘렀다.

김 기사가 초소에 왔다. 소장이 수량확인 했으니 나보고 인준하라고 부른다고 했다. 못간다고 전하라 했다. 또 왔다. 녹음기처럼 똑 같은 얘기를 김 기사에게 했다. 김 기사가 세번째로 달려왔다.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치밀어 올라왔다. 용암처럼 분노가 폭발했다.

"이 망할노무새끼가 뒈질려고 환장했나!"

한걸음에 달려갔다.

뒤따라오던 김기사의 얘기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김 주사님, 화나도 참으시고요 좋게좋게 말씀하세요."

102동 2문 앞에 소장이 서있었다.

"야, 이 쌍노무 새끼야. 1초소 경비원 김동한이 여기왔다. 니 우얄낀데. 아파트 관리소장이 그렇게 높아. 나는 무식한 경비원이라 욕질해도 괜찮지만 니는 체면때문에 욕도 못해. 야 이새끼야. 나 당장 그만 둬도 솥에 개 안 눕는다."

삿대질을 해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왠일인가 싶어 사람들이 주욱 모여들었다.누구와 그렇게 싸워보기는 칠십평생에 첨이었다.

내일 당장 쫓겨난다해도 속이 후련했다.

찌던 감정을 시원하게 분출했기 때문이었다.

분이 좀 가라앉은 뒤에 돌이켜 보니,

아무리 그렇긴해도 그래도 나이가 작든 많든 직장상사다.

뭇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망신을 준것은 결코 잘한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아침조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3초소 최 선배가 말했다.

"아침에 그렇게 망신당하면 하루종일 기분이 찜찜한데."

그날 아침조회때 반론을 하다 소장에게 무안할 정도로 얻어 맞았다.

어제 출근했더니 이런 말이 떠돌았다. '소장이 김동한이 해고하려고 동대표회의 소집한다.' 고 하더라.

'망할노무 새끼, 너하고 한통속인 동회장에게 아첨해가며 어디 니맘대로 해봐라. 숨 한 번 덜 쉬고 만원 쓸것 5천 원 쓰면 된다. 날 내보내면 니 놈도 그리 편치는 못할 것이다.

노동청에 불려다녀야 되고 지방신문에 기사나면 망신 당할테니 말이다.'

천직賤職인 경비원에게도 조그만 자존심은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다. 마지막 보루堡壘인 그 자존심을 건드리면 너 나없이 죽기살기로 덤벼던다. 자존심은 빈자貧者에게도, 약자에게도, 소중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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