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번인 오늘도 초소에 쭈구려 앉아 근무를 한다.
2초소 김희동 씨가 오늘 낮에 볼일이 있다며 대무를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2005년 5월, 아파트에 처음 일하러 왔을 땐 우리 아파트엔 상부상조相扶相助라는 것이 있었다. 오늘, 희동 씨처럼 무슨 볼일이 있을 땐 이초소 저 초소에서 왔다갔다하며 도와주곤했다.
세월이 가고 원조 경비원은 한 사람 또 한 사람 퇴직을 했다. 빈 자리엔 신입이나 경력 경비원으로 채워졌다. 또 관리소장도 이 사람 저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러는 동안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미덕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두 세시간 볼일을 보려고 해도 대무자代務者를 앉혀놓아야 했다.
법과 규정을 준수하면 탈은 없다. 책임의 한계도 명확해 진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팍팍하게 돌아간다. 가슴이 메말라진다. 너와 나만 있지 우리라는 공공체는 없어지고 만다. 급기야 아름다운 미풍美風도 사라진다.
우리네의 생활을 법과 규정의 잣대로만 들이댈것은 아니라고 본다. '중용中庸의 원리대로 우리네 일상생활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을 하며 갑론을박甲論乙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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