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며
느릎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 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왜일까? 왜 이럴까?
왜, 이 아침에 박목월 시인의 시, 청노루가 생각날까?
그래서일 것이다. 어젯밤에 블로그, '이 강촌의 일기' 에 들어가서 강촌일기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골마을에 터잡고 사는 강촌님은 고라니를 보고도 놀란다고 했다.
'얼띠기는. 우예, 고라니 보고도 놀라노!'
그렇게 중얼거리며 빙그레 웃었다.
'얼띠다' 는 '얼뜨다' 의 경상도 방언이다. 재바르지 못하고 어리숙하다는 뚯이다.
이 글에서는 전자의 의미이다.
역(逆)으로 생각하면 '얼띠다' 란 홍진(紅塵)에 때묻지 않은 순박함을 뜻한다.
강촌님은 그러한 분일게다. 재바르지 못해 손해를 보는, 그러나 맘은 넉넉한, 이웃의 아픔에 가슴앓이 하는 가슴이 따뜻한 그런 분일게다.
얘기의 방향을 돌려본다.
박목월님의 시, 청노루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봄이었다. 담임,
오상현 선생님께서 흥얼거리며 읊으시던 청노루를 듣고 몇번 따라 읊던 사이에 외우게 되었다.
국어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청노루를 읊으시더니, "이 시, 아는 사람 손들어봐라." 고 하셨다.
손을 번쩍 들었더니 그러면 한 번 읊어보라고 하셨다. 달달 외웠더니 그럼, '나그네' 도 아냐고 물어셨다. 알턱이 없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나그네를 읊으셨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시, '나그네' 전문"
구름에 달 가듯이 세월은 흘러갔다.
그때의 선생님도, 제자이었던 나도, 일흔의 나이를 넘어섰다.
선생님께서는 일흔의 후반에, 나는 일흔에 점 하나를 찍었다. 오늘도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