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전화를 걸어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다. 가라앉은 목소리만큼 약속 장소로 가는 내 발걸음도 무거웠다.
동생은 눈이 부은 채 앉아 있었다. 부부싸움 후 한달이 지나도록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듣고 보니 자존심 싸움이었다.
무슨 말을 할지 난감했다.
"그냥 네가 화해하자고 얘기해 보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생은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과 밥도 먹지 않는다고 울먹이며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한참 하소연을 들은 뒤 내 이야기를 했다.
"나도 심하게 싸우면 밥을 같이 안 먹어. 차려만 주고 다른 곳에 가 있지. 하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진수성찬을 차린단다. 무슨 마음으로 차리는 줄 아니? '당신이 나 아니면 어디서 이런 음식을 먹겠어.' 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차려. 나라면 자존심 상해 수저도 안 들 텐데 우습게도 그이는 코를 박고 먹어. 이내 웃으면서 '고마워, 잘 먹었어.' 하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풀려. 너도 이 방법을 써 봐. 같이 살 거면 최선을 다해야지."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다. "고마워. 언니 말대로 하니 남편이 밥 먹다 말고 나를 안더라. 자기가 옹졸했다며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어." 나는갑자기 뭉클했다. 그리고 제부에게 고마웠다. 서로 배려하며 사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 둘은 충분히 느꼈으리라.
*이 글은 '좋은생각' 2016. 8월호에서 모셔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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