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때였다. 아침을 죽한릇으로 부실하게 때웠더니 배가 쉬 고파왔다.
해서, 12시 땡하자마자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밥 한그릇 다 먹고 양치질까지 했는데도 시계는 12시 28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래, 자전거 찾아오자. 아침 출근할때 자전거점에 맡기고 온 자전거 찾아오자.' 그렇게 맘을 먹고 초소문을 잠궈고 털레털레 걸어서 자전거를 찾으러갔다. 낮 12시에서 오후1시까지 한 시간은 근무시간에서 제외되는 휴게시간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102동 사는 전우영씨를 만났다. 그사람은 이름 석자 밑에 '씨' 자를 붙여주기가 거부감이 들만큼 나와는 앙숙지간이다.
자전거를 찾아서 초소에 돌아오니 12시 50분쯤 되었다.
오후 2시쯤 되어서다. 순찰용시계 찾으러 관리사무소에 들렸더니 경리담당 여직원만 있고 소장은 부재중이었다. 경리 여직원이 말했다. 시계는 1층기사실에 있을 거라고. 나오려는데 경리 여직원이 주춤하더니 나를 불러세웠다. "김 주사님, 오전에 어디 외출나갔다 오셨어요? 누가 전화했어요. 경비실 비우고 외출했다며."
"예. 점심시간에 자전거 찾아왔어요. 그런데 전화한 사람이 남자맞지요? 102동 1703호 전우영이 맞지요."
경리 여직원이 대답했다.
"예. 맞아요. 어디나가더라도 소장님께 말씀드리고 나가세요. 전화 자꾸오면 좋을 것 없죠."
"점심시간에도요."
"그럼요."
'이런 빌어먹을.'
그렇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집이 가까이에 있는 직원은 점심, 저녁 먹으러 집엘 간다. 요즘도 차로 출퇴근 하는 직원은 때되면 집에 가서 끼니를 해결하고 온다. 소장도, 경리도, 기사도 다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온다.
경비원이라고 점심시간에 멀리도 아닌 가까운 곳에 볼일좀 보고오지 말란 법있나!
'지가 뭐 경비원 상전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경리와 기사는 한 두해만 근무해도 주임이라는 칭호를 붙혀준다. 그것이 옛날부터 이어져온 관료주의의 관습이다. 경비원과 청소원은 10년 넘게 근무해도 경비원이고 청소원일뿐이다.
나와 전우영씨는 일흔이 넘은 노인이다. 아무리 앙숙지간이라해도 나이든 노인네는 할짓 못할짓이 있다. 남 못살게 해서 무슨 보람을 얼마큼 볼려고 사무실에 고자질을 하는가. 근무시간도 아닌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외출하고 들어온 것을.
고자질은 참 나쁜 짓이다. 남의 뒷퉁수를 치기 때문이다.
노인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결코 추하게 늙어서는 안된다.
전우영씨는 내 뒷퉁수도 쳤고 갑질도 했다. 벌써 몇번을 참았다. 앞으로 더 이상 유사한 일이 벌어자면 나도 내자신을 통제할 자신이 없다.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경비원이라는 이유로 참을만큼 참았기 때문이다. 유사한 일이 더 이상 안 일으나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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