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추절추절 가을비가 내렸다.
출근은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비가 오니 오늘은 좀 편히 쉴 수 있겠다' 고.
근 일주일간을 우리 경상도말로 쌔빠지게 일했다.
인부가 베어놓은 벌목을 묶어서 쌓아올리느라고 연일 중노동을 했다.
작업지시자는 관리소장이 아니라 동회장이었다. 동회장은 나이가 쉰한 살이다.
일흔이 넘은 경비원에 비하면 한참이나 젊은 나이다. 아버지와 자식같은 나이다.
동회장은 솔선수범하게 앞장서서 일을 했다. 그러나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아파트에서는 동회장이 왕이다. 회장의 말은 곧 법이다. 그야말로 제왕적 권력을 행세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자가 아파트동회장이다.
일흔이 넘은 경비원들은 연일 계속되는 작업에 모두 지쳐있었다.
하루쯤 쉬었으면 하였지만 동회장은 작업을 강행했다.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흘러간 옛노래에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 이라고 했다.
너도 나도, '오늘은 하루쯤 쉬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동회장은 일회용 방진복을 하나씩 나눠주면서 작업을 강행했다.
힘없는 늙은이들은 방진복 뒤집어 쓰고 추절추절 내리는 가을비 맞으며,
쌓아놓은 벌목을 차에 실어 아파트공터로 옮겨야했다. 그일이 오늘 해야할 작업이었다.
작업은 열두시 반까지 계속되었다.
동회장은 자기가 좋아서하는 일이라지만 나이든 경비원은 그게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불만의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난리가 쳐들어 오는 것도 아닌데 이게 뭐하는 짓이람. 벌어먹고 살려니까 내참 더러워서."
"날 받아놓고 하는 모내기도 아니고 좀 물렸다 하면 안돼나. 방진복뒤집어쓰고 꼭 이렇게 비맞아가며 해야하나. 동회장 공적비라도 세워조야겠꼬만!"
그랬다. 심했다. 정도를 너무 넘어섰다. 순리에 역행하는 짓이었다.
작업이 끝나면 수고했다고 회식을 시켜준다고 했다. "회식? 고기 한 지름 술 한 잔 안먹고 말지!"
오늘도 가진 것 없는 이땅의 노인들은 가슴에 물레방아를 돌린다.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세월을 안고, 빙글빙글 스리슬슬 잘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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